[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 "태사공이 말하기를 권세와 이익으로 만난 자는 권세와 이익이 다하면 사귐도 멀어진다고 하였다. 날이 차가워진 다음에야 소나무가 시들지 않음을 안다"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조선 후기의 대표 문인 '추사 김정희'로 깜짝 변신했다. 짙은 분장으로 평소같은 얼굴은 사라지고, 망건과 두루마기 복식을 한 말년의 조선 선비로 태어났다. 그의 목소리엔 추사와 닮은 올곧음과 근엄함이, 때론 세상살이의 혹독함과 고독함이 묻어났다.
김 지사는 공연 시작에 앞서 분장을 받고 리허설을 하는 동안, 세한도 발문 낭독연습에 한창이었다. 시선을 어디에 둬야할지, 걸음걸이는 어떻게 해야할지, 목소리는 또 어떤 톤으로 낼지 연신 고민하면서도 주변 관계자들과 의견을 조율했다. 그는 이번 공연을 위해 과천 문화원, 공관과 리허설장을 오고가며 한달 넘게 연습해왔다. 김 지사는 "현 시대에 필요한 실사구시 정신을 존경하며, 그 정신을 이어가고 싶다"고 말했다.
무대에 오른 김 지사는 추사의 제자 우선 이상적에게 보낸 편지인 '세한도 발문'을 낭독했다. 세한도는 추사 김정희 선생이 제주도 유배시절 자신을 찾아주는 제자에 대한 보답으로 그린 작품이다. 김 지사는 총 7장으로 구성된 공연 중 5장 '오래도록 잊지 않을 인연들-세한도'에서 5분가량 낭독과 연기를 선보였다. 이 장에서는 외롭고 쓸쓸한 제주생활에서 부인의 죽음을 뒤늦게 안 추사가 그곳에 피어있는 수선화로 위로받고 슬픔마음을 시로 달래는 모습이 나타나 있다. 또 시를 통한 비유로 도도한 권세와 이익을 스스로 벗어난 제자 이상적을 위해 그린 세한도의 뜻을 여운으로 남기고 있다.
조선 최고의 가문에서 태어난 추사 김정희 선생은 노년의 10여년에 가까운 세월을 귀양살이와 병마로 시름하며 불계공졸(잘되고 못되고를 꾀하지 않음)의 예술관을 잉태시켰다. 시대를 초월한 파격미와 실사구시의 정신을 글과 그림으로 승화시킨 천재 예술가로 평가를 받는다.
오진희 기자 val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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