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는 간단한다. 기자는 은행원만큼 수에 밝지도 않고, 또 은행과 은행원만큼 믿을 만한 곳이 없다는 생각이 기자의 머릿속에 각인돼 있다. 은행과 은행원에 대한 '무한신뢰'에서 비롯된 오래된 기자의 은행거래 습관이다.
하지만 은행에 대한 기자의 '무한신뢰'에 얼마 전부터 금이 가기 시작했다. 연초 은행 지점장의 고객 돈 수십억 '꿀꺽'사고에서 시작된 미세한 금은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 담합 의혹, 대출서류 임의 조작, 학력에 따른 금리 차별, 신용평가 수수료 및 중도상환 수수료 횡령 등의 소식에 유리창에 금이 가듯 쫙 금이 가버렸다.
기자의 '무한신뢰'가 와장창 깨지는 일도 발생했다. 바로 코픽스(COFIXㆍ자금조달비용지수) 금리다. 코픽스는 은행연합회가 9개 시중은행의 자금조달 비용을 기초로 계산해 매달 15일께 공시한다. 은행들은 이 지수를 토대로 주택담보대출 금리를 산정한다. 입력된 숫자에 따라 수많은 주택담보대출자들에게 이자가 부과된다. 숫자가 잘못 입력되면 수많은 고객들이 잘못 입력된 만큼 이자를 더 내야 한다.
이런 중요한 시스템에 오류가 발생한 것이다. 그것도 한 은행원의 단순 실수로 말이다.
하지만 '여도지죄(餘桃之罪)'라고 했다. 먹던 복숭아를 타인에게 줬을 경우 상황에 따라 칭찬을 받을 수도 있고, 또 경우에 따라선 죄가 될 수도 있다. 사람(고객)은 자신이 처한 상황이나 심리적 상태, 경제적 상황에 따라 가치와 정서가 바뀔 수 있다는 뜻이다.
이미 올 초부터 터진 은행 곳곳의 금융사고로 은행에 대한 신뢰에 금이 간 터라 이번 코픽스 오류 사고가 더욱 민감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글로벌 경기 침체로 살림살이가 팍팍해진 고객 입장에서 은행의 단순 실수를 너그럽게 넘어가기 쉽지 않다.
그러나 실수한 은행 직원에게 모든 책임을 덮어씌우기보다 단순 실수(물론 해서는 안되는 실수이지만)임에도 불구, 쉽게 용서로 이끌어 내지 못할 만큼 신뢰를 잃은 은행권 전체가 반성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래야 고객의 '무한신뢰'를 다시 얻을 수 있다.
조영신 기자 as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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