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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詩]안도현의 '염소의 저녁'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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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 말뚝에 매어 놓은 염소를 모시러 간다/햇빛이 염소 꼬랑지에 매달려/짧아지는 저녁(……)할머니가 잡고 있는 따뜻한 줄이 식기 전에/뿔 없는 할머니를 모시고 어서 집으로 가야겠다고/염소는 생각한다


안도현의 '염소의 저녁' 중에서

■ 할머니가 염소를 '모시러' 간다는 표현이 흘러나온 순간, 그의 마음 속에 시(詩)가 돋았다. 옛사람들은 비가 '오신다'고 하지 않던가. 자연 현상에 절로 옷깃을 여미는 마음이 되는, 그 경지는 자연과 인간 간의 관계 전체에 대한 아름다운 반성이다. 그것처럼 염소를 모시러 가는 마음에도 할머니와 염소의 관계에 대한 세상의 통념들이 깨지는 '사건'이 들어있다. 멋진 반전은 마지막 세 줄에 일어난다. 할머니는 염소를 모시러 왔지만, 염소는 뿔도 없이 외롭게 살고 있는 할머니를 자기가 모시고 집으로 간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할머니가 염소를 모시러 오는 마음에는 아직도 인간이 제 몸을 낮춘다는 의식적인 태도가 있지만, 염소가 할머니를 모시고 가는 순간, 이 선한 짐승은 완전한 동행의 존재, 혹은 인간을 감싸는 영성(靈性)의 존재가 된다.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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