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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어사회-에듀푸어] 대치동 전세민 "월급 半은 내 돈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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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세놓고 강남 학군 이사
전세비용 부족 추가 대출
국내 에듀푸어 205만 추정


[아시아경제 조강욱 기자] "학원비 부담 때문에 힘들죠. 하지만 애들 장래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것 아니겠어요."
16일 밤 10시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A학원 앞에서 만난 박 모씨(47)는 어색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박 씨는 현재 자녀 사교육비로만 월 150만원 가량을 지출하고 있다. 중학교 2학년인 큰 딸은 영어와 수학 등 기본 과목만을 학원에서 수강하는데 70만원이 든다. 초등학교 6학년인 둘째 딸은 영어, 수학에 논술학원까지 다닌다. 학원비는 각각 40만원, 30만원, 10만원이다.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박 씨는 광명시의 보유주택을 전세주고 대치동으로 이사와 소위 '대전살이(대치동 전세)'를 하고 있다. 전세금 차액 때문에 이미 2억원을 대출받은 상태로, 내년에 또 전세금이 올라갈 것을 생각하면 눈앞이 캄캄하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해 발표한 '한국의 양육비 지출 실태' 조사에 따르면 자녀 1인당 월 평균 양육비는 2003년 74만8000원에서 2009년 100만9000원까지 상승했다. 자녀 한 명 당 출생에서 대학 졸업까지 드는 총 양육비는 2억6200만원에 달한다. 초등학생 자녀는 월 88만원, 중학생 98만원, 고등학생 115만원, 대학생 142만원으로 아이가 커갈수록 교육비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그런데 자녀 양육비와 사교육비 부담이 늘면 자연히 가계의 가처분 소득액은 줄어든다. 소득은 고정돼 있는데, 고정비용이 늘어난 탓이다. 저축이나 노후준비는 언감생심이다. 이런 구조는 김 씨의 경우처럼 자녀 교육을 위해 빚까지 지는 '에듀푸어(education poor)'를 양산한다. 자녀 사교육비를 대느라 번듯한 외식 한번 못하는 가구가 속출하는 이유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으로 등록금이나 사교육비 등을 위해 빚을 지고 있는 가구는 71만1000가구에 달한다. 전국 1740여만 가구의 4.1%에 달하는 수준이다. 가구 구성원으로 따지면 205만명이 '에듀푸어'에 해당한다는 얘기다. 빚의 규모도 가구당 평균 1706만원이다.

대기업 차장인 이 모씨(44)는 초등학생 1명과 유치원생 1명 등 두 명의 저녀를 두고 있다. 7년 전에 2억5000만원이라는 빚을 지고 산 아파트는 최근 부동산 경기 하락으로 가격이 폭락했지만 매월 120만원의 대출이자는 꼬박꼬박 갚아나간다. 그렇다고 자녀 교육엔 소홀할 수가 없어 첫째는 영어학원과 미술학원에 다니고 있다. 내년에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둘째는 우리나라 말도 서툴지만 영어학원에 다니고 있다. 이 씨의 한 달 급여 500만원(세후)의 절반 이상을 애들 교육비와 대출이자로 쓴다. 전형적인 에듀푸어 가정이다.

정년이 얼마 남지 않은 김 모씨(53)의 경우는 '에듀 푸어'에서 '실버 푸어'로 전이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김 씨는 2004년 은행에서 2억원을 대출을 받았고 처가로부터도 8000만원을 빌려 용인 죽전에 아파트를 장만했다. 이후 자녀들 교육비 때문에 은행 대출금의 원금을 갚는 일은 꿈도 꾸지 못하고 있다. 은행 빚 2억원은 고스란히 가계의 부담이다. 중간 정산 받은 퇴직금은 처가에서 빌린 돈을 갚는 데 썼다. 노후생활을 위한 자금은 전혀 없는 상태다.

서울대 노화고령사회연구소에 따르면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의 노후 대비를 위한 월평균 저축액은 17만원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아이들 교육 때문에 소비ㆍ저축 여력을 뺏긴 '에듀푸어'는 은퇴 후에도 빚 걱정을 해야 할 '실버푸어'로 전락하는 악순환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

김승권 보건사회연구원 선임 연구위원은 "현재 가계부채 문제는 대부분 주택과 사교육비 문제로 인해 발생한 것"이라며 "가계소득의 30% 이상을 교육비로 지출하는 가구는 '에듀푸어'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조강욱 기자 jomar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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