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교롭게도 유로 2012 우승ㆍ준우승국이 지금 유로존에서 경제 사정이 무척 어려운 나라들이다. 뱅크런으로 자금난에 몰린 스페인은 지난달 구제금융을 신청했다. 그러면서도 2020년 하계올림픽 유치 신청서를 냈다. 이탈리아는 다음 위기의 진원지로 지목되는 나라다. 러시아를 누르고 8강에 오른 그리스는 이미 재정 파탄 상태다.
1983년 멕시코 세계청소년축구대회에서 한국이 4위를 해 국민을 열광시킨 적이 있다. 그때 나라 밖에서 '외채 많은 나라들의 큰 잔치'라고 비꼬았다. 외채 3위 멕시코가 주최한 대회에서 외채 1위 브라질이 우승했고 준우승은 외채 2위 아르헨티나, 3위는 당시 공산권에서 외채가 가장 많았던 폴란드, 4위가 외채 4위 한국이었음을 두고 한 말이다.
끝내 브라질 등 중남미 국가들은 3년 뒤 1986년 외채 상환 동결을 선언했다. 멕시코는 선진국 클럽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한 1994년 말 페소화 가치가 폭락하고 외국 자본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외환위기를 맞았다. 1996년 OECD에 가입한 한국도 이듬해 말 IMF로부터 구제금융을 받기에 이르렀다.
어디서 듣던 이야기다. 지금 대한민국에서도 벌어지는 일들이다. 호화 청사에 경전철 건설 등 전시성 사업을 벌이다 재정이 거덜 날 위기에 처한 지방자치단체가 한둘이 아니다. 무리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업으로 무너진 저축은행에 대한 3차례 구조조정에 공적자금이 투입되고 있다. 국가부채 비율이 32%로 괜찮다고 하는 점까지 스페인과 닮았다.
1997년 말 환란 때는 심각했던 기업 부채와 달리 국가와 가계 부채는 괜찮았다. 그래서 짧은 기간에 IMF 관리 체제를 졸업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가계 부채가 문제다. 국가 부채도 공기업 부채를 더하면 60%대로 치솟는다. 가계 부채를 걱정하면서도 금융 당국은 서로 핑퐁 게임이고, 위기 관리를 지휘해야 할 정치권력 주변에서는 썩은 내가 진동한다. 국가 경제든 가계든 무리한 빚 살림은 결국 탈이 나고 만다. 축구도 경제도 믿을 것은 스스로의 힘이다.
양재찬 논설실장 jay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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