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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상준 기자의 CINEMASCOPE - '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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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상준 기자의 CINEMASCOPE - '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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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태상준 기자] 정지우(45) 감독의 영화 '해피 엔드'를 1999년 시사로 처음 봤을 때를 잊을 수 없다. 극 초반 휘몰아치는 최보라(전도연 분)와 김일범(주진모 분)의 정사(情事)는 놀라왔다. 큰 스크린 가득 여자 주인공의 엉덩이가 넘실대는 화면에선 절로 침을 '꼴깍' 댔다. 더 놀랐던 것은 그 다음 이야기를 끌어가는 방식이었다. 이후 영화는 세 축 주인공들의 서로 다른 욕망의 충돌과 파국을 통해 절대적 행복의 가치에 의문을 표한다. '해피 엔드'라는 제목은 일면 역설적이지만 무척 효과적인 작명이다. 누군가의 '해피 엔드'가 또 다른 누구에게는 '언해피 엔드'가 될 수 있다. '해피 엔드'가 단발성 센세이션 영화가 아닌, 강렬한 메시지를 담보한 근사한 장르 영화로 기억되는 이유다.

'해피 엔드' '사랑니' '모던 보이'의 정지우 감독의 통산 네 번째 장편 극영화 '은교'는 센세이션 면에서는 단연 '해피 엔드'를 능가한다. 인터넷 검색 창에 '은교'를 치면 성기, 음모, 전라, 10대 여고생 등 감각적이고 말초적인 단어들이 우르르 따라 나온다. 그럴만 하다. 박범신 작가의 동명의 소설을 영화화한 '은교'는 일흔의 위대한 시인 이적요(박해일 분)과 그의 제자 서지우(김무열 분), 그리고 열일곱 살 소녀 한은교(김고은 분)의 욕망의 삼중창이다. 존경과 애정으로 이어지던 사제 적요와 지우의 관계는 소녀의 등장을 계기로 애증으로 망가지고, 셋의 삶은 공히 파국으로 치닫는다. 가히 '해피 엔드' 그 두 번째 이야기라고 해도 될 것 같다.
소설과의 비교는 무의미하다. 정지우 감독은 400페이지가 넘는 원작의 방대한 서사를 각색하는 과정에서 몇 인물과 설정을 과감히 쳐냈다. 소설이 적요와 지우가 남긴 두 권의 노트가 말하는 은교의 후일담이라면, 영화는 셋의 관계를 철저히 현재 시점으로 풀어놓는다. 영화 초반 적요의 초라한 육체와 은교의 젊은 몸의 확연한 대비는 정지우 감독이 '은교'를 통해 진정으로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성기와 음모 노출, 격렬한 정사 장면 역시 이에 도달하기 위한 효과적인 장치다.

"너희 젊음이 너희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내 늙음도 내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라는 적요의 말은 '은교'의 주제를 가장 잘 설명하는 수사다. 젊었건 늙었건 많이 배웠건 적게 배웠든 관계없다. 인간 모두는 가슴과 성기를 갖고 있다. 그 누구든지 사랑하고 욕망할 권리는 있다. '해피 엔드'처럼 '은교'도 이미 센세이션을 뛰어넘었다. 정지우 감독의 귀환을 환영한다.




태상준 기자 birdc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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