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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못 찾은 익안대군 영정이 가슴 속에…”

최종수정 2012.02.27 11:28 기사입력 2012.02.27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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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람] 28년 동안 문화재범죄 맡은 강신태 문화재청 사범단속반장, “일반인들까지 절도해 문제”

강신태 문화재청문화재정책국 안전기준과 사범단속계 반장.

강신태 문화재청문화재정책국 안전기준과 사범단속계 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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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영철 기자] “2000년 1월에 잃어버렸다가 다음 해 4월 일본서 문화재 세탁 뒤 들어온 것을 되찾았다가 또 잃어버렸다. 범인은 잡혀서 10년 형을 받았지만 지금까지 영정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없어 못 찾고 있다. 내가 꼭 되찾을 것이다.”

충청남도 지방지정문화재 329호 조선 태조의 셋째 아들 익안대군 영정각(논산시 연산면)서 도난당한 <익안대군 영정> 이야기다. 28년간 문화재 절도단을 잡아온 강신태(59) 문화재청 사범단속계반장에게 아직 못 찾은 문화재는 안타까운 마음에 한까지 서렸다.
익안대군 영정은 문화재 전문털이범 추모(당시 61세)씨가 4500만원에 전 고미술협회장에게 넘겼다. 협회장은 일본으로 밀반출한 뒤 현지에서 정상유통과정을 거친 것으로 꾸며 그해 7월 김해세관을 통해 들여왔다. 우리나라 수집가들 사이에 서화나 영정이 비싸고 일본은 불화가 비싸 다시 들여온 것이다.

되찾은 영정은 2중 금고에 넣어져 다시 영정각에 보관됐으나 추씨 제자인 서모(52)씨가 이를 털었다가 2009년 붙잡혔다.

서씨와 절도범들은 경상남도에서부터 대전을 거쳐 경기도까지 옮겨가며 문화재를 훔쳤다. 경주 양동마을 서백당, 강릉 선교장 등 고택·사당·서원 등에서 영정·현판·고서적을 훔쳤다. 강 반장은 7900여 점을 되찾았지만 영정은 돌아오지 않았다.
사라진 익안대군 영정.

사라진 익안대군 영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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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년간 찾은 문화재 2만2000여 점

강 반장은 1983년 신안해저유물 발굴조사원으로 공직을 시작, 1984년 완도 해저유물 발굴조사원을 거쳐 그 때 기피부서였던 문화재관리국의 사범단속반에 뽑히면서 전문털이범들과의 전쟁을 시작했다.

학창시절 마라톤, 권투 등 안 해본 운동이 없을 만큼 운동을 좋아했다. 사범단속계의 일이 특수임무인 만큼 자신의 몸을 보호할 능력을 갖춰야했던 사범단속계원의 조건에 적임자로 뽑히면서 일을 시작하게 됐다.

강 반장은 “젊었을 때는 육탄전도 많이 했지. 한번은 범인이랑 4층에서 서로 부둥켜안고 1층까지 거의 굴러 내려온 적도 있다. 어쩔수가 있나. 범인은 달아나야 하고, 나는 잡아야 하는데 도둑들은 나를 제일 미워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절도범이 교도소를 다녀온 뒤에 나를 찾아오거나 새 사람이 돼 살아가는 걸 보면 반가운 마음이 먼저 앞선다”고 덧붙였다.

강 반장에게도 고민은 있다. 그는 “예전엔 절도범들 사이에서도 국보급 문화재는 건들지 않는다는 일종의 룰이란 게 있었다. 거래가 어렵기도 하고 절도범들이 문화재가치를 아니까 국보급은 손을 대지 않았다. 그런데 이젠 마구잡이식으로 문화재를 훔쳐 간다”며 걱정했다.

그는 이어 “TV프로그램 ‘TV쇼 진품명품’이 우리 문화재의 가치를 알리는 일도 했지만 문화재가치를 돈으로 따져 물량화하고 있다”며 “돈이 된다는 생각에 일반인들도 문화재를 파괴하고 훔쳐간다”고 설명했다. 그만큼 ‘평범한 도둑’들까지 문화재 쪽으로 눈길을 돌려 이제는 누가 활동하는지 파악하기도 힘들어졌다는 견해다.

그림이 사라지면 누구, 영정은 누구, 문집은 누구 하는 식으로 전국에 전문가들이 있고 문화재절도범들도 이들에게만 훔친 물건을 넘겼다. 일반절도범들은 전문가를 모르므로 고미술협회나 골동품상 등에 싼 값으로 넘겨버리고 이 문화재는 시장에 나오기가 무섭게 사라진다는 게 강 반장의 말이다.

도난문화재의 장물거래 규모도 늘었다. 지난해 포항 ‘여헌 장현광 영정’ 등 도난문화재의 장물거래 등 8건에 40명이 관여했고 2866점을 되찾았다. 2010년엔 경주 서백당 소장 전적 등 14건에 38명이 거래한 2867점을 되찾았다. 1992년 토기병 등 문화재 절취 및 불법거래로 10건에 164점을 되찾은 것보다 15배 가까이 늘었다.

문제는 찾지 못한 문화재가 아직도 많다는 것. 문화재청서 정리한 ‘최근 10년간 문화재 도난 및 회수현황’에 따르면 2002년 1838점을 잃어버렸고 626점을 되찾았지만 2011년엔 4189점을 잃어버렸다.

지정문화재는 65건을 되찾았으나 비지정은 되찾기가 쉽잖다. 1986년 민통선 안 건봉사 사리탑에서 잃어버린 부처님 진신사리 12과 중 8과를 되찾았지만 4과는 아직 못 찾고 있다.
강신태 문화재청 사범단속반장이 받은 '대한민국 최고기록공무원 인증서'.

강신태 문화재청 사범단속반장이 받은 '대한민국 최고기록공무원 인증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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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박물관에 10년 보관한 대단한 수법

2010년 6월에 국립민속박물관 학예관이 강 반장에게 전화를 했다. 누군가 고려 말 문인 도은(陶隱) 이숭인(李崇仁) 문집 목판 72점을 3500만원에 팔겠다고 연락이 왔다. 시중에 나올 물건이 아닌 것 같다는 학예관 말에 강 반장이 조사했고 성주 이씨 재실에서 보관하다 30년 전 잃어버린 물건으로 확인됐다.

강 반장은 장물이라고 확신하고 바로 팔겠다는 사람의 사무실로 찾아갔다. 그 사람은 “대학도서관에서 나온 유물”이라고 펄쩍 뛰었다. 사무실서 차를 마시다 옆문으로 지나가는 사람을 얼핏 살펴봤고 10년 전 붙잡은 문화재전문털이범이었다. 바로 뒤쫓아 갔지만 잡을 수 없었다. 강 팀장과 대전지방경찰청은 문화재 출처와 유통과정을 수사한 결과 2000년 7월께 절도범으로부터 장물을 사들여 경북의 한 대학도서관에 보관위탁, ‘세탁’과정을 거쳐 판 것으로 확인했다.

범인은 10년이 지난 뒤 대학에 문중사람들에게 자료를 한 번 더 보여주려 한다며 동전 등 가치가 떨어지는 건 그대로 두고 문집 등 서책위주로 찾아갔다. 강 팀장은 도난문화재의 유통경로 등을 추적하고 대전지방경찰청은 범인수사를 통해 2010년 7월부터 2011년 7월까지 4559점을 되찾았다. 또 전국의 문중 등의 탐문으로 17명의 도난문화재소유자를 확인했다. 회수된 문화재 중 958점의 도난문화재가 제자리로 돌아갈 예정이다.

이들을 붙잡아도 형법상 10년의 공소시효가 지나 처벌할 근거가 없었다. 같은 말이지만 형법엔 ‘보관’이라 하고 문화재법엔 ‘은닉’이라 해 처벌규정이 있는 것으로 이들을 붙잡을 수 있었다. 문화재법상 “장물문화재의 은닉보관은 별도로 처벌”한다는 규정이 있기 때문이다.

강 팀장은 “문화재사범을 뒤쫓는 일은 많이 외롭다. 현장에서 잠복하다 헛탕치는 일도 많다. 누가 알아주지도 않는다. 그래도 문화재를 찾아 제자리로 돌아갈 때 고생한 보람을 느낀다”며 30년 가까운 공직생활을 정리했다.

강 팀장은 2009년 11월25일 행정안전부로부터 최고기록공무원으로 인정받았다.

이영철 기자 panpany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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