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는 예부터 ‘해학’이라는 기능으로 우리들을 울리고 웃기며 지금까지도 많은 인기를 끌고 있다. 만화의 큰 장점은 무거운 소재를 조금은 가볍게 만들어 많은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1. 지금은 없는 이야기
『지금은 없는 이야기』에서는 가위바위보로 모든 것을 결정하는 마을에서 손을 다쳐 매번 질 수밖에 없는 사람의 부당한 현실을 통해 우리 사회에서 과연 ‘법’이라는 것이 약자에게 어떻게 적용되는가를 생각해 보게 한다.
또한 자연스럽게 순환하는 숲의 질서가 파괴돼 가는 과정에 빗대어 원하지 않아도 어쩔 수 없이 경쟁에 끼어들 수밖에 없게 만드는 사회 시스템을 풍자한다. 이 밖에 부조리하고 불합리한 사회 현실을 다양한 알레고리로 풀어낸다.
그가 함축과 은유로 풀어내는 짧은 우화들의 메시지는 기존의 우화와는 결이 다르다. 한진 중공업사태, 비정규직 문제 등 우리가 직면한 사회문제들을 상기시키기도 하고 그런 사회문제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해결할 것인지에 관한 새로운 틀을 제시하기도 한다. 또 약자들간에도 서로 연대하지 못하고 우위에 서려는 개인의 불편한 욕망을 꼬집기도 한다. 기존의 모든 우화를 뒤집는, 지금 우리에게 꼭 필요한 이야기 『지금은 없는 이야기』는 우리가 처한 현실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다양한 관점을 제시해줄 것이다.
2. 사람 사는 이야기
만화와 기록 문학의 만남을 시도하는 휴머니스트 다큐멘터리 만화의 첫 번째. 우리나라 '종이 만화'의 미래를 짊어지고 있는 대표 작가들이 함께 어우러져 판을 만들었고, 발품을 팔아 사람들 속으로 파고들어 우리 시대를 표상할 조각들을 찾아냈다. 이 이야기들이 큰 것이건 작은 것이건, 감동적인 것이건 우스운 것이건 만화가들은 저마다의 방법으로 한 시대를 기록했다.
『사람 사는 이야기』는 삼화고속 노동자들과의 인터뷰를 다룬 만화, 최규석의〈24일 차〉를 시작으로 그 외에 최호철, 정용연, 이국현, 황경택 등 여러 작가들이 우리에게 전하는 가슴 아픈 이야기를 담고 있다.
3. 울기엔 좀 애매한
『울기엔 좀 애매한』은 최규석 만화가의 작품 세계를 새롭게 가르는 책이다. 애매하게 가난한 차상위 계층의 주인공들이 만화가가 되기 위해 미술학원을 다니며 겪는 소소하고 애매한 고통을 다룬 이 책은 작가 자신이 2, 30대 때 미술학원에서 입시 만화를 가르치며 목격한 대한민국 청소년들의 우울한 현실이 담겨 있다.
위선으로 똘똘 뭉친 386 지식인으로 나오는 헌책방 주인, 미술 교육보다는 자기 잇속만 챙기는 학원 원장과 학원 강사 등 작가가 혐오해온 부조리한 사회와 개인에 대한 노골적인 비판은 여기서도 빛을 발한다. 작가는 어른이 되면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사실 어른도 별 힘이 없으며 그저 세월만 흐르면 되는 게 어른이란 사실에 절망한다.
최규석은 이 책에서 독자들의 정신이 번쩍 들도록 울분을 토하거나, 이 책이 학생들에게 위안과 희망을 주는 작품이면 어땠을까 싶지만 자신이 목격한 모습들을 최대한 그 온도 그대로 담고자 했다고 말한다.
그는 대한민국 청소년이 처한 ‘울기엔 좀 애매한’ 상황을 절묘하게 그려낸다. 그들이 처한 상황이 목 놓아 울만큼 극단적이지 않아서가 아니라 무엇 때문에 슬픈지 모를 만큼 복합적이기 때문에 애매하다는 것이다. 훨씬 부드러워지고 깊어진 펜 선과 세련된 색감의 수채 만화는 보는 즐거움을 더하고 본문 뒤에 들어간 작업 노트 또한 최고의 작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작가 최규석의 열정을 엿보게 한다.
김현희 기자 faith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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