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오후 1시 30분께, 금융감독원 1층 소비자민원센터에 특별한 민원인 2명이 찾아왔다. 이들은 500명의 보이스피싱 피해자들이 모인 인터넷 카페의 운영자들로, 피해자들을 대표해 금감원에 카드론 보이스피싱 피해 관련 진정서를 제출했다. 카페 회원들과 금감원 정문에서 침묵시위를 벌인 직후였다. 면담을 요청했던 권혁세 금감원장 대신 금감원 카드 관련 실무자들이 그들을 맞아 1시간 30분 동안 상담을 진행했다.
카드사들은 피해자들이 항의전화를 해도 원금 탕감은 커녕 카드론 이자만을 면제해 주고 생색을 내기 일쑤다. 악착같이 카드사와 싸운 일부 고객만이 겨우 10~20% 정도 원금 탕감을 받았다. 결국 피해자들이 소송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금융경찰'을 자처하는 금감원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금융 소비자 보다는 카드사 입장에서 감독 정책을 펴고 있다는 비난을 사고 있는 것. 피해자들은 지난 5월 카드사들에게 본인확인을 강화하라고 지도했으나 제대로 지켜지지 않아 피해자가 양산됐다고 지적하고 있다. 부랴부랴 본인확인 장치를 마련해 이달부터 적용토록 했으나, 16일 현재 2개사만이 시스템을 구축해 놓은 상태다. 여전히 카드론 피해가 양산될 여지가 남아있는 것이다.
카드사들이 임의적으로 카드론 한도를 높이는 것 역시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게 금감원의 입장이다. 이는 여신전문업법 내에 카드론에 대한 규제조항이 사실상 전무하기 때문이다. 금감원에 따르면 여전법에는 카드사가 카드론을 취급할 수 있다는 것이 명시돼 있을 뿐 이에 대한 규제조항은 없다.
보이스피싱 피해자 모임 대표인 이대원(자영업자ㆍ59)씨는 "금감원이 어떻게든 도움을 줄 것이라고 생각하고 일부러 찾아와 진정서를 내고 상담을 했지만 판에 박힌 대답뿐이었다"며 "이제라도 카드사들의 카드론 영업에 위법행위가 있었는지 철저히 조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지은 기자 leez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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