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의 악몽 되짚어본 돈의 가치
[아시아경제 김효진 기자]전쟁에 내몰린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건 뭘까. 인간성, 자유, 평등, 질서, 민주주의 모두 아니다.
전쟁터에서는 전장을 디딜 군화 한 켤레, 탈출 보트나 트럭의 귀퉁이 한 자리가 수백만 파운드보다 더 가치있다. 극단적인 상황이 가치의 우선 순위를 뒤바꾸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차별적인 살생이 허용되고, 평소 지켜오던 역사적인 가치는 자리를 잃는다.
이런 절망적인 구상의 동기는 독일이 겪었던 상상을 초월하는 인플레이션이다. 제1차 세계대전 뒤 독일에 불어 닥친 극심한 인플레이션에 사람들은 빵 한 조각을 사려고 커다란 자루로 마르크화를 날라야 했고, 어떤 사람은 지폐가 남아돌아 벽지 대신 사용하기도 했다.
문제는 당시 사태가 전쟁통에 그 모든 가치를 뒤로하고 군화 한 켤레와 보트ㆍ트럭의 귀퉁이 한 자리를 차지하려는 사람들처럼 물 불 안 가리는 선택을 하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극단이 극악을 택하도록 한 것이다. 독재자 히틀러 얘기다.
인플레이션이 히틀러를 만들었다고 단정 짓긴 어렵지만, 인플레이션이 적어도 히틀러의 성공에 한 몫을 하긴 했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초인플레이션에 놓인 독일 국민의 일상과 태도를 적나라하게 그려낸 이 책이 의미있는 건, '인플레이션'으로 상징되는 극단적인 혼란과 '히틀러'로 대변되는 극단적인 선택이 어느 나라에서든, 언제든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돈과 경제, 그래서 잘 붙잡아야 한다.
돈의 대폭락/ 애덤 퍼거슨 지음/ 이유경 옮김/ 엘도라도/ 1만5000원
김효진 기자 hjn2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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