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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0 m ST 銀' 그리비, 조국의 혁명을 위해 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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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스포츠투데이 이종길 기자]400m 트랙을 7바퀴 반 돌며 넘어야 하는 28개의 허들. 30~70㎝ 깊이의 물웅덩이까지 더 해진 레이스는 결코 소화하기 쉽지 않다. 여자 3000m 장애물 경기다.

하비바 그리비(튀니지)는 2011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이 종목 은메달리스트(9분11초97)다. 그의 수상은 외신으로부터 많은 주목을 받았다. 2006 아프리카육상선수권대회에서 은메달을 획득한 그는 2009 이태리 페스카라 지중해게임에서는 1500m에 도전해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하지만 이날 화제를 모은 건 다방면에서의 고른 활약 때문이 아니었다.
그리비는 튀니지의 간판 여자선수다. 올림픽에서 여자 3000m 장애물 경기는 2008 베이징대회 때 처음 치러졌다. 그리비는 역사적인 경기에 출전해 9분25초50의 기록으로 13위에 이름을 올렸다. 2009 베를린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는 9분1??2초52만에 결승점을 통과하며 6위를 차지했다. 잇따른 좋은 성적 덕에 그는 2009년 ‘튀니지 최고의 여자 운동선수’로 선정되는 영광을 떠안았다.

간판선수답게 그리비의 조국 사랑은 각별하다. 이날 경기 뒤 그는 두 손으로 대형 국기를 흔들며 세계만방에 튀니지를 알렸다. 경기 뒤 가진 인터뷰에서 “튀니지 국민들을 위해 뛰었다”고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그런데 질문에 응하며 그리비는 자주 눈시울은 붉혔다. 혼란을 겪고 있을 가족, 친구, 국민들이 떠오른 까닭이었다.

튀니지는 지난해부터 재스민 혁명으로 몸살을 겪고 있다. 26살 청년 모하메드 부아지지가 부패한 경찰의 노점상 단속에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며 분신으로 항의한 것을 계기로 반(反)정부 시위가 벌어졌다. 독재정권에 저항하기 위한 움직임은 튀니지 전역으로 빠르게 확대됐다. 벤 알리 대통령의 사우디아라비아 망명으로 23년간의 독재정권은 붕괴됐지만 전 정권의 인사들이 그대로 유임되며 시위와 총격전은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다. 과도정부 출범 뒤 사망자는 80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비는 민주화를 외치는 튀니지 국민들에게 희망을 전달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들의 고통을 떠올리며 몬도트랙을 힘껏 내달렸다. 그리비는 “튀니지 국민들에게 꼭 선물을 주고 싶었다”며 “내 승리로 그들이 조금이나마 웃을 수 있길 바랐다”고 말했다. 이어 “오늘의 은메달은 진심으로 얻은 결과”라고 만족스러움을 표시했다.

사실 그는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준비에 적지 않은 애를 먹었다. 지난해 수술대에 오르며 1년을 통째로 날려먹었고 재스민 혁명으로 재활 속도를 끌어올리지 못했다. 그리비는 “트랙을 달리는데 경기장 밖에서 총성이 자주 들렸다”며 “어쩔 수 없이 훈련을 중단한 게 한 두 번이 아니었다”라고 털어놓았다.

어쩔 수 없이 프랑스로 넘어가게 된 그리비. 하지만 그는 조국의 혁명운동을 원망하지 않는다. 이를 자랑스럽게 여기며 뜨겁게 지지한다. 그리비는 “재스민 혁명을 계기로 인접국가인 바레인, 리비아, 이집트, 모리타니 등에 민주화 바람이 불고 있다”며 “튀니지가 혁명의 진원지가 우뚝 선 것은 더없는 자랑거리”라고 말했다. 이어 “늘 희생자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그들을 떠올리며 더 열심히 달리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2012 런던올림픽에서 더 나은 성적을 노린다. 한 번도 해내지 못한 세계대회 정상의 자리다. 그리비는 “튀니지 국민들의 희생을 떠올리며 뛰고 또 뛰겠다”고 밝혔다. 아직 튀니지의 정세는 안정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개의치 않는다. 모든 장애를 이겨낼 만큼 마음가짐을 단단하게 먹었다. 이날 트랙에서 허들과 물웅덩이를 뛰어넘은 것처럼 말이다.




스포츠투데이 이종길 기자 leem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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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길 기자 leem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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