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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준희의 축구세상]미완으로 끝난 청소년 축구의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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즈보니미르 보반(왼쪽)과 다보르 수케르 [사진=Getty Images/멀티비츠]

즈보니미르 보반(왼쪽)과 다보르 수케르 [사진=Getty Images/멀티비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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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FA 여자월드컵과 코파 아메리카가 끝나기 무섭게 이번에는 FIFA 20세 이하 월드컵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얼마 전 칼럼에도 썼던 것처럼 ‘축구 시계’는 실로 멈출 줄을 모른다. 축구가 그만큼 글로벌한 스포츠인데다 전 세계적으로 각급 시스템이 완벽하게 구축되어 있는 까닭이다.

오늘은 20세 이하 월드컵과 관련해 떠오르는 흥미로운 역사 한 가지를 이야기해 볼까 한다. 축구 세계의 이른바 ‘골든 제너레이션’에 관한 이야기다.
‘골든 제너레이션’ 즉 ‘황금 세대’란 기본적으로는 상대적인 개념이다. 강팀이건 약팀이건 축구를 해온 국가라면 한번쯤은 그 국가의 축구사 속에서 유난히 눈에 띄는 멤버를 구축한 시기가 있는 법이니 말이다. 예를 들어 우리와 꾸준히 맞닥뜨리고 있는 아랍 에미리트의 경우 바로 지금이 그들의 골든 제너레이션이라 할 만하다. 아흐메드 칼릴이 중심이 된 아랍 에미리트는 2008 AFC 19세 이하 선수권에서 우승을 차지한 후, 우리와 마찬가지로 2009년 20세 이하 월드컵에서 8강에 올랐고 지난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는 은메달을 차지했다. 세계 정상과의 거리는 한참 멀지만 적어도 그들의 역사 속에서 이는 틀림없는 황금 세대다.

소수의 축구 강국들에겐 황금 세대가 빈번하게 찾아온다. 실상 이 황금 세대가 얼마나 자주 출현하는가의 문제야말로 최고 수준의 강국과 그 다음 가는 강국, 그 밑의 다크호스들과 약팀들을 구별되게끔 하는 기준이다. ‘축구 왕국’ 브라질을 보라. 그들의 황금 세대는 디디, 바바, 지토, 자갈로, 가린샤로부터 펠레, 카를로스 알베르토, 토스탕, 제르손, 자이르지뉴, 리벨리누를 거쳐 지코, 소크테라테스, 팔카웅, 세레조, 에데르, 주니오르로 이어졌다. 물론 2002년의 주축 카푸, 카를로스, 히바우두, 호나우두의 세대 또한 빼놓을 수 없다.

‘해가 지지 않는’ 브라질과는 매우 대조적으로, 세계 정상권에 다가갔으나 그것이 ‘일회성’에 그치고 말았던 황금 세대의 대표는 불가리아다. 불가리아는 1994 월드컵에서 비슷한 연령대의 서유럽 리거들(흐리스토 스토이치코프, 크라시미르 발라코프, 요르단 레치코프, 에밀 코스타디노프, 트리폰 이바노프)을 앞세워 4강에까지 진출하는 기염을 토했지만, 선수들과 협회 간의 갈등이 불거지며 유로96 8강 진출에 실패한 이래 지금에 이르기까지 줄곧 저조한 성적에 머무르고 있다.
잘 알려진 포르투갈의 골든 제너레이션은 불가리아에 비해서는 장수한 편이다. 1989, 1991년 20세 이하 월드컵을 2연패한 포르투갈은 이 세대의 선수들인 루이스 피구, 마누엘 루이 코스타, 파울로 소사, 주앙 핀투, 페르난도 쿠투, 아벨 사비에르 등에다 비토르 바이아, 세르지오 콘세이상 등의 가세로써 60년대 이후 가장 두드러진 시기를 맞이했다. 그러나 포르투갈의 황금 세대 역시 궁극의 성공에는 도달하지 못했는데 그들의 최고 업적은 유로2000 4강이 전부였다. 물론 ‘에이스’ 피구만은 끝까지 남아 2006 월드컵 4강 고지에 오르기도 했지만 말이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이끄는 지금의 포르투갈이 앞선 황금 세대가 이루지 못한 거대한 트로피의 꿈을 실현하게 될 것인지도 관심거리다.

불가리아, 포르투갈과 엇비슷한 시기에 황금 세대를 경험한 또 다른 나라들은 루마니아와 나이지리아다. 역시 1994 월드컵에서 8강에 오르며 정점으로 치달았던 루마니아는 최정상의 플레이메이커 게오르게 하지를 위시해 게오르게 포페스쿠, 플로린 라두치오유, 아드리안 일리에, 단 페트레스쿠, 비오렐 몰도반, 일리에 두미트레스쿠 등이 일군의 세대를 구성했다. 제이 제이 오코차, 에마누엘 아무니케, 은완코 카누, 다니엘 아모카치, 선데이 올리세, 빅터 익페바, 피니디 조지와 같은 재능들이 동시대에 쏟아졌던 나이지리아는 1996년 비록 올림픽이기는 했으나 초호화멤버의 브라질, 아르헨티나를 연파하고 금메달을 목에 건다. 그러나 21세기로 넘어오고 나서는 루마니아, 나이지리아의 번뜩이던 시기도 막을 내렸다.

하지만 지금껏 이야기해왔던 모든 팀들보다 더욱 강한 임팩트와 깊은 여운을 남기는 골든 제너레이션의 대표 주자는 적어도 필자의 견해로는 ‘유고슬라비아’다. 1987년 칠레에서 열린 20세 이하 월드컵에서 우승을 거머쥐었던 유고슬라비아는 즈보니미르 보반, 로베르트 야르니, 다보르 수케르, 로베르트 프로시네츠키, 프레드락 미야토비치, 이고르 스티마치 등을 포함하고 있었다. 그리고 1991년, 유고슬라비아 클럽 레드스타 베오그라드는 프로시네츠키와 데얀 사비체비치, 다르코 판체프, 시니사 미하일로비치, 블라디미르 유고비치 등으로 무장하고서 챔피언스리그 정상에 오른다. 최정상급의 플레이메이커 드라간 스토이코비치를 비롯해 스레치코 카타네치, 알리오사 아사노비치, 알렌 복시치 또한 이 모든 선수들과 유사한 연령 범주에 위치함을 고려하면 당대 유고슬라비아가 보유했던 재능의 크기는 한마디로 가공할 수준이다.

1990 월드컵 준준결승에서 유고슬라비아는 수적 열세 속에서도 아르헨티나를 궁지로 몰아넣었던 바 있고, 1998년 크로아티아는 바로 이 세대의 선수들로써 월드컵 3위를 차지했다. 유고슬라비아를 대신해 유로92 본선에 나섰던 덴마크는 유럽챔피언에 올랐다. 스포츠에는 ‘만약’이라는 어휘가 소용없지만 ‘그래도 만약’ 유고 내전에 의해 이 팀이 파괴되는 일이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선수들 간 내부 갈등으로 오히려 크로아티아보다 못한 성적표를 받아들었을까?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쩌면 이 ‘슈퍼 유고슬라비아’는 92년부터 98년까지의 두 번의 월드컵, 두 번의 유로 가운데 적어도 한두 차례 거대한 트로피의 주인공이 되었을 수도 있다. 축구 외적 환경으로 말미암아 ‘미완’으로 끝난 유고슬라비아의 황금 세대는 지금에 이르기까지도 팬들과 평론가들의 상상의 세계 속에서 사고실험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한준희 KBS 축구해설위원·아주대 겸임교수



스포츠투데이 조범자 기자 anju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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