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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다 슈이치│<퍼레이드>부터 <사요나라 사요나라>까지, 그의 조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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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인>은 요시다 슈이치 스스로 ‘지금까지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대표작’이라고 말한 작품이다. 이 말을 가슴에 품고 <악인>을 읽다 보면 데뷔작 <최후의 아들>부터 국내 독자들에게 그의 이름을 알린 <퍼레이드>, 무라카미 류의 극찬을 받은 <랜드마크>, 그리고 <악인> 이후 선보인 또 하나의 문제작 <사요나라 사요나라>까지, 여러 작품과의 연결 고리를 발견하게 된다. 이에 <악인>에 등장하는 몇 가지 키워드를 통해 요시다 슈이치의 주요 작품들을 정리해보았다.


마이너리티에 대한 애정, <최후의 아들>
1997년 작 <최후의 아들>은 요시다 슈이치의 데뷔작이다. 중학교 시절 알게 된 게이 친구를 따라 도쿄로 상경한 주인공이 번화한 도시에서 자신을 받아 준 또 다른 게이와 동거하는 과정에서 겪는 정체성 혼란과 소수자의 애환을 그린 단편 소설이다. 요시다 슈이치는 작품 속에 게이, 재일 한국인, 지방 소시민 등 주류 사회에서 소외당하기 쉬운 인물들을 등장시키며 ‘마이너리티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다. <악인>의 주인공들 역시 번화한 도쿄로 상징되는 일본의 현실에서 소외된 지방의 소시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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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심연의 악의와 감춰진 폭력성, <퍼레이드>
2002년 작 <퍼레이드>는 요시다 슈이치의 첫 장편소설이다. 도쿄 세타가야의 한 아파트에서 동거하는 다섯 명의 남녀를 통해 평범해 보이는 가면 뒤에 함께 사는 이들에게도 말할 수 없는 비밀을 안고 살아가는 도시 젊은이들의 현실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초기 대표작이다. 다양한 인물들의 시점에서 전개되는 이야기 구성에 세상을 다층적인 시선으로 보고자 하는 작가의 특성이 반영되어 있다. 소설의 후반부에 밝혀지는 충격적인 반전은 인간 심연에 똬리를 틀고 있는 악의와 광기, 그리고 이것이 폭력으로 표출된다는 점에서 <악인>과 닮았다. <악인>과 마찬가지로 2010년 유키사다 이사오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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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도시인의 가벼운 관계 맺음과 휴대폰 만남 사이트, <동경만경>
2003년 작 <동경만경>은 도쿄만 부근 시나가와 부두의 한 창고에서 육체노동을 하는 남자와 그 건너편의 오다이바에 위치한 대기업에서 일하는 여자가 휴대폰 만남 사이트를 통해 가벼운 만남을 시작한 뒤 진정한 사랑을 깨달아 가는 연애 소설이다. <악인>에서 휴대폰 만남 사이트는 유이치가 두 여성, 요시노와 미츠요를 만나게 되는 통로로, 비극적인 사건의 발단인 동시에 그를 구원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동경만경>과 <악인>에서 휴대폰 만남 사이트가 활용되는 방식은 다르지만, 두 작품 모두 의사소통에 서툴고 진지한 관계를 맺는 것이 두려운 현대인들이 가볍게 타인과 관계를 맺고자 하는 욕망이 투영된 장치로 사용된다. 2004년 후지TV에서 나카마 유키에 주연의 드라마로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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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과 비밀을 간직한 육체노동자, <랜드마크>
2004년 작 <랜드마크>는 도쿄 근교의 재개발 지구에 건설되는 35층짜리 거대 나선형 빌딩을 축으로 빌딩 안과 밖에서 일하는 두 남자의 일상을 교차하며 현대인의 고독을 건조하게 묘사한 작품이다. <악인>의 유이치처럼 젊고 과묵하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말하지 않은 비밀을 안고 있는 철근공 하야토가 주인공이다. 대학 시절, 학교 생활보다 에어컨 설치, 이삿짐 인부, 자판기 관리원 등 다양한 육체노동에 몰두했던 요시다 슈이치는 “육체 노동을 하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그런 것들이 내게 큰 경험이 되어 글을 쓰게 된 것 같다”고 밝힌 바 있는데,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에는 종종 육체노동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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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가 아닌 무대, 나가사키, <나가사키>
2004년 작 <나가사키>는 전후 나가사키 지역에서 번창한 야쿠자 집안의 흥망사를 통해 나가사키의 과거와 현재를 보여주는 성장 소설이다. “작품을 쓸 때 가장 먼저 정하는 것은 이야기가 시작되는 장소는 어디인가이다”라고 스스로 밝혔듯이 요시다 슈이치의 작품에서 ‘장소’는 굉장히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악인> 역시 이야기의 무대인 후쿠오카와 사가를 연결하는 미츠세 고개에 대한 섬세한 묘사로 소설이 시작되고, 유이치가 나고 자란 나가사키의 어촌 마을은 사람들과의 소통에 소극적이고 서투른 그의 캐릭터에 개연성을 부여한다. 실제로 요시다 슈이치 역시 나가사키 출신이라 이곳을 배경으로 하거나(<워터>) 이곳 출신이 주인공인 작품(<요노스케 이야기>)이 많다. 소설 <악인>에서는 표준어로 번역되었지만 영화에서는 이 지방 사투리가 그대로 구현되어 리얼리티가 더욱 부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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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을 수 없기에 아름다운 사랑, <사요나라 사요나라>
2008년 작 <사요나라 사요나라>는 <악인> 이후 출간된 작품이다. <악인>을 통해 그간의 작품 세계를 집대성하고 정점에 올라섰다고 평가 받은 그 후 요시다 슈이치는 <사요나라 사요나라>를 통해 더욱 도발적인 질문을 던지며 깊고 강렬해진 세계를 선보였다. <악인>의 유이치와 미츠요는 살인자와 그를 사랑해 함께 도피하는 여자라는 힘든 관계로 만났지만 사랑으로 서로를 구원하는 존재가 된다. 그러나 이 사랑은 세간의 눈으로는 이해되기 어렵기에 유이치는 미츠오의 목을 졸라 그녀를 피해자로 만들며 그녀를 지키고자 한다. ‘강간 사건의 가해자와 피해자가 십 년의 세월 후, 부부처럼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그린 <사요나라 사요나라>는 쉽게 이해되기 어려운, 그래서 어쩌면 세상에 있을 수 없기에 오히려 가장 아름답고 궁극적인 사랑을 그렸다는 점에서 <악인>과 가장 닮아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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