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행사 대표는 외국 기업에 프레젠테이션을 하며 과거 실적을 공개했다. 외국인들의 질문은 이랬다. "한국에 대기업들이 많은데 왜 그들로부터 유치한 실적이 없는가." 그들은 대기업들이 거의 예외 없이 여행사를 계열사로 끼고 있거나 특수 관계인에게 그룹의 전 여행 업무를 모두 몰아주어 다른 여행사가 들어갈 여지가 없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 같았다고 그 대표는 웃었다. 여행사뿐인가. 재벌들은 서로 비슷한 업종을 대부분 갖고 있어 재벌 외의 기업들 진입이 어렵다.
얼마 전 국정감사에서 LS산전의 전기 계량기 사건이 도마에 올랐다. 이 기업은 지난해 한전의 계량기 입찰에서 공고한 단가 2만6634원의 43% 수준인 1만1600원에 낙찰받았다. 인도네시아에서 저가 완제품을 수입한 것이다. 한 중소기업인은 "10년 이상 힘들여 개발한 중소기업의 국산 제품을 대기업이 수입품을 들여와 누르니 누가 힘들여 기술개발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대기업의 한 사업부에서 1~2명의 직원이 '신규 사업'으로 싼 수입품을 들어와 수십명이 수년간 달라붙어 기술을 개발한 중소기업의 제품을 죽이기는 쉽다. 대기업은 그렇게 철저하게 이익을 추구해야 하나, 그것이 국내 소비자와 발주업체에 이익이 되는 것인가 의문은 남는다.
중소기업들은 대기업 상대로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할 때 수억원까지 비용이 들어도 떨어진 업체는 한 푼도 건지지 못한다고 불만을 터뜨린다. 외국기업이 탈락 기업들에 소요 비용의 절반 정도를 보전해주는 것과 대조적이다. 어느 코스닥 등록업체 사장은 또 "뭔가 사업이 될 만하면 대기업들이 프로젝트를 슬쩍 갖고 가 사업을 더 벌일 의욕이 떨어진다"고 호소했다.
주요 20개국(G20) 선진국들이 들으면 놀랄 '선진 한국'의 속 모습이다. 그러니 정부와 대기업이 아무리 대ㆍ중소기업 동반상생을 외쳐봐야 중소기업인들이 코웃음치고 격앙하는 것이다. 대기업들은 본업에 주력하되 곁가지 사업에 눈 돌리지 않고 중소기업들이 활동할 틈을 주는 것이 필요하다.
이상일 논설위원 bru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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