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Dim영역

[서울서울인]전통이발 3대째 이어온 '성우이용원' 이발사를 만나다

스크랩 글자크기

글자크기 설정

닫기
인쇄 RSS

"한번 머리를 깎는데 4~5종류의 가위를 쓰죠. 막가위, 숱가위, 머리모양잡는 가위, 중벌가위, 마무리 가위인데 이발의 꽃은 가위와 빗으로만 머리를 깎는 기술이죠"

서울 중구 만리동 시장 길을 따라 배문중학교를 거쳐 오른쪽 골목길로 들어서면 '싹싹싹'하는 경쾌한 가윗소리가 들린다. 이발소인 '성우이용원'에서 들려오는 소리다. 성우이용원은 지난 1927년부터 80여년간 3대째 이발을 해온 곳이다. 전기면도기가 아니라 가위와 칼 등을 써서 짧은 머리를 다듬는 이른 바 '전통 이용원'이다.
1970~1980년대의 이발소 모습 그대로인 이 곳에는 민속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물건들이 적지 않게 있다.검은 바탕에 흰색 글씨의 낡은 간판, 페인트칠이 벗겨진 나무문과 얇은 창문. 거기에 어울리는 아담한 화분, 나무, 꽃들. 4평 남짓한 내부에는 노란색 스펀지가 삐죽 나와 투명테이프로 붙인 접이식 의자, 선풍기, 세면대와 가위, 칼 등 연장들은 향수를 부추기기에 충분하다.

이 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물건은 사장인 이발사 이남열씨가 애지중지하는 면도용 독일제 칼. 나이가 들어 이발을 그만둔 어느 일본인 이발사에게서 이씨가 샀다고 한다. 이 칼은 130년전에 만들어진 것이다. 몸체는 시커멓지만 날은 시퍼렇게 살아있어 살짝 스치기만해도 피가 나올 것 같아 소름이 돋았다.

이씨는 "가위나 칼, 연장들을 가는 날은 1년에 5~6번이다. 아침에 일을 하러 나올 때 아무도 내 앞에 지나는 사람이 없고 정신이 맑은 날을 택한다"고 말했다. 그만큼 칼가는 일은 높은 집중력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이씨가 세상에서 가장 귀하게 여기는 게 이런 A급 연장. 그러나 이씨는 1년에 한 두번 2만~3만원의 고가 이발비를 받을 때만 쓴다고 한다.

 
이씨는 "자신을 이기는 사람이 칼을 제대로 간다"고 설명했다. 이씨는 칼가는 기술을 제대로 익히려면 30년이 걸린다고 했다. '인내'없이는 이발사가 되기 어렵다는 뜻이었다. 젊은 시절 이발 기술을 연마할 때는 심지어 보조 이발사도 자격증이 있어야 했고, 개인 편차가 있겠지만 7년정도의 수련기간이 있어야 면허를 딸 수 있었다고 했다.

할아버지, 아버지에 이어 이발기술을 이어가고 있는 이씨의 이발경력은 45년. 지난 1964년부터 이발에 입문한 그는 1971년 2월 4일 양택식 전 서울시장 이름으로 나온 이발사 면허증을 땄다.

그러나 1970년대부터 교도소 수감자를 대상으로 한 이발사 양성이 활발해지면서 세상이 달라졌다. 간단하고 빨리 이발하는 기법이 통용되면서 전통이발기법은 쇠퇴기를 맞은 것이다. 면허증 없어도 영업하는 곳도 많아졌다. 이발사들의 이미지가 급격히 하락한 것은 퇴폐 이발소가 성행했기 때문이다. 이발소 차려 2년동안 영업해 집사지 못한 사람은 바보취급 받을 정도였다며 그는 혀 끝을 찼다.

이씨는 "이발을 제대로 하면 80분이 걸리는데 지금처럼 5~10분만에 뚝딱 끝내서는 안된다"면서 "미용실에서 이발하는 것은 불법"이라며 전통이발기술에 대한 권리를 찾아야 함을 강조했다.

그는 "짧은 머리를 다듬는 기술은 이발, 파마나 고데(불에 달궈 머리모양 다듬는 일), 드라이, 염색 같은 기술이 미용"이라면서 "이 둘은 엄연히 다른 기술이고 배우는 과정도 전혀 다르다"고 말했다.

그에게는 22살짜리 대학생 아들이 하나 있다. 멀티영상학을 전공해 이발의 길에 들어설 생각은 없다. 이씨는 "아들이 배운다고 하면 독일가서 연장을 만들어 오겠다"고 웃었다. 후대양성을 바라면서도 향후 10년안에 전통이발이 사라질까봐 걱정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오진희 기자 valere@asiae.co.kr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AD

함께 본 뉴스

새로보기

이슈 PICK

  • [힙플힙템] 입지 않고 메는 ‘패딩백’…11만개 판 그녀 하이브-민희진 갈등에도 굳건한 1위 뉴진스…유튜브 주간차트 정상 [포토] 외국인환대행사, 행운을 잡아라

    #국내이슈

  • 100m트랙이 런웨이도 아닌데…화장·옷 때문에 난리난 중국 국대女 "제발 공짜로 가져가라" 호소에도 25년째 빈 별장…주인 누구길래 "화웨이, 하버드 등 美대학 연구자금 비밀리 지원"

    #해외이슈

  • [포토] '다시 일상으로' [포토] '공중 곡예' [포토] 우아한 '날갯짓'

    #포토PICK

  • 캐딜락 첫 전기차 '리릭' 23일 사전 계약 개시 기아 소형 전기차 EV3, 티저 이미지 공개 현대차 수소전기트럭, 美 달린다…5대 추가 수주

    #CAR라이프

  • 앞 유리에 '찰싹' 강제 제거 불가능한 불법주차 단속장치 도입될까 [뉴스속 용어] 국내 첫 임신 동성부부, 딸 출산 "사랑하면 가족…혈연은 중요치 않아" [뉴스속 용어]'네오탐'이 장 건강 해친다?

    #뉴스속OO

간격처리를 위한 class

많이 본 뉴스 !가장 많이 읽힌 뉴스를 제공합니다. 집계 기준에 따라 최대 3일 전 기사까지 제공될 수 있습니다.

top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