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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 귀신친구가 찾아온다

최종수정 2015.12.18 16:33 기사입력 2015.12.18 16:23

[빈섬스토리]몇해 전이었다. 친구가 하나 죽었다. 마음 터놓고 지내던 녀석이었는데 교통사고로 갔다. 공부에 억척이라 남들 직장 기웃거릴 때 한눈 안팔고 학교에 남아 어렵다는 강사자리를 꿰찼고, 당시엔 박사코스를 밟고 있는 중이었다. 그의 죽음은 깨진 유리조각처럼 보도블럭에 흩어졌다. 으깨어진 안경, 그리고 피밴 아스팔트, 통곡소리. 그리고 그의 얼굴 위에 덮이던 하얀 천이, 요즘도 가끔 나의 얼굴을 뒤덮어, 놀라 잠깨기도 한다.

요컨대 그의 죽음은 무료하던 나의 일상 속에 튀어든 한점 핏방울이었다. 섬뜩한 놀라움. 그간의 정을 추스르며 슬퍼하기엔 전혀 마음이 예비되어 있지 않았다. 그저 섬뜩한 놀라움이었다. 어떤 다른 감정도 떠올릴 수 없었다. 그의 죽음을 느끼고 깨닫게 되는 건 아주 오랜 뒤였다. 그는 나의 삶 속에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 촘촘히 들어와 있었다. 어떤 얘기를 하다가도 그의 말버릇, 혹은 그의 주장들이 툭 튀어나온다. 그는 나의 틈이라고 해야할 무엇이었다.

그가 자주 가던 술집, 그와 올랐던 산길, 그와 드라이브했던 도로마다 그는 여전히 무뚝뚝하고 객적은 웃음으로 서있다. 그와 닮은 사람을 볼 때마다 그와 비슷한 목소리를 가진 사람을 만날 때마다 그리고 그와 비슷한 욕설을 내뱉는 주정꾼을 만날 때에도 그는 거기 서성거렸다. 죽음이란 다만 그것이 어떤 새로운 행위를 만들지 않는다는 것을 빼고는 변함없이 거기있는 무엇의 색다른 존재방식이었다.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하지만 내가 말하고 있는 건, 죽은 녀석에 대한 그리움 따위의 감정은 아니다. 보다 구체적이고 실재적인 무엇이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어느날 나는 전화를 받았다. 전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때마침 내리는 비 때문인가. 혼선같은 잡음이 잠시 들렸다. 침묵. 그리고는 긴 한숨소리가 얼핏 지나갔다.

나야. 오늘 교보문고에 갔다오는 길이야. 위대한 개츠비 새 번역판이 나왔더군. 서울대 박명식교수가 옮긴 건데, 제법 깔끔한 번역이더라. 피츠제럴드가 흐뭇해 하겠어. 다만 너무 리얼하게 번역한답시고 경상도 사투리를 군데군데 써놓은 건 거슬리더라구. 미국놈이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건 우습잖어?
침묵은 이런 말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오늘 날씨가 우중충하니 나 혼자 떠벌리는 군. 다음에 또 전화하지,하고 끊는다.

아니면 이런 것이다. 북한산 새벽 등산을 간다. 술을 많이 마신 다음날이라 고통스럽다. 허위적허위적 헉헉대며 바윗길을 오르노라니 뒤에서 누가 툭 친다. 돌아본다. 아무도 없다. 작은 돌이 하나 투르르 굴러내려간다. 등줄기에 흐른 땀을 닦는다. 눅눅하고 서늘한 새벽공기를 느끼며 후우 한숨을 내쉬면서 눈을 감다가 뜬 나는 어떤 기척을 느꼈다.

나야. 요새, 너 왜 이리 비실거리냐? 짜식, 요즘 블로그다 뭐다 미친 녀석처럼 돌아다니더니만 영 몸이 갔군. 내가 뭐랬냐? 그런 건 젊은 녀석들이나 뛰어댕기면서 끓는 피나 달랠 겸 하는 짓거리지. 거기서 무슨 문학이란 말이냐? 문학은 혼자 하는 거라구,혼자! 아참 뭐 거기 너 뭐 맡아서 한동안 골머리 싸매더니 이젠 괜찮냐? 니가 무슨 그런 일을 한다고 그래? 넌 그냥 글이나 쓰고 뒷자리에 가만 앉아있는 게 어울리는 타입이야. 지 주제를 알아야지.하핫. 하긴 넌 뭘해도 열심히야 하지. 잘 미치잖아? 좋게 말해서 열정이고 나쁘게 말하면 소모전이지.

나는 뿌옇게 내려오는 북한산의 안개를 바라본다. 안개는 육중한 무게로 바위를 옮긴다. 거기다 허연 어둠을 가져다 놓는다. 나는 이죽거리며 낄낄거리는 녀석을 떼어두고 쫓기듯 산길을 내려온다.

아니면 이런 일이다. 심야에 술이 취해 기형도 모양 혼자 영화관엘 간다. 가끔 그런다. 술이 자극한 외로움의 과장이 나를 이끌고 가는 것이리라.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망연히 돌아가는 색깔과 그림들을 본다. 죽이고 섹스하고 불태우고 총쏘는 사람들을 본다. 눈을 감으면 필름은 거꾸로 돌아간다. 전쟁, 아니 그냥 욕설과 구타가 가득하던 한밤, 어느날의 내무반으로. 거기 나는 쫄디쫄은 이등병으로 야전삽이 내려까는 머리통들을 느끼며 시체처럼 굳어 서있다. 문득 영화에서 눈을 떼어 옆자리에 눈길을 주었을 때 누가 날 흘낏 본다.

자네 버릇 여전하군. 술 마시면 집에 들어가지 심야에 이런덴 왜? 궁상맞기는...그러니 개꿈을 꾸지. 저긴 캘리포니아여. 니가 뺑이치던 봉수리 군대가 아니라구. 어쨌든 요즘 영화들은 너무 내용이 없어. 그저 실험의 뼈다귀들만 있는 것 같아. 진정한 실험이란 관객의 감동을 끄집어내고 그들의 감정적인 격렬한 반응을 실험하는 것이라고 봐. 어설픈 살인귀들이 피 죽죽 흘리는 저따위 영화. 아니면 내용도 잘 이어지지 않는 애매하고 몽롱한 이야기 구성. 엉덩이에 뿔난 천재들이지. 사랑이란 이불도 덮지 않고 원색으로 까발기는 에로티시즘. 아니면 끝도 없는 지루함으로 관객의 인내를 실험하는 사이비실험들. 그걸 영화라고 만들어대니...사기꾼들이지. 하기야 너처럼 술 취한 뒤 허벌레한 정신으로 보는 놈들이 있으니 영화도 킬링타임에 장단을 맞추는 거지. 좌우지간 영화란 산업 만은, 갈 수록 퇴보하는 것 같애. 상상력이 죽어간다고나 할까. 아니 죽어가는 것은 아니고 이상발달하여 성숙을 멈춰버린 것이라고나 할까. 건조한 꿈들만 가득해. 끔찍해. 보고나면 더 허탈할 걸?

그는 도무지 못참겠다는 듯 일어서서, 담배나 한대 피고 와야겠어,하고 손바닥 마이크로 내게 소근대더니 휭 나가버린다. 뒷모습을 바라보며 다시 접히는 옆자리의 의자를 취한 눈으로 멍하니 본다.

이런 얘기를 하는 건 정신나간 짓이 아닐까? 누가 사실이라고 믿어줄까? 헛것을 봤거나, 상상이 풍부하시군,하는 핀잔 만을 만나는 짓은 아닐까? 나로선 사실이라고 해도, 그를 위해서, 그와의 내밀한 교유를 위해서 이런 건 고백하지 않는 게 옳지 않을까? 하지만 이런 얘기를 털어놓게 된데에는 이유가 없었던 건 아니다. 어젯밤이었다. 청소년 축구를 보면서 한참 열받고 있을 때였다. 소파 뒤에서 인기척이 있는 듯 해서 돌아본다. 축구하면 아직도 차범근과 그 아들, 둘이만 차는 건줄 아는 아내가 훈수들러 나온 건 아니다. 엉망으로 풀려가는 경기가 짜증스러워 허리를 비틀며 기지개를 켰더니 뒤에서 핀잔이 날아온다. 야야야, 텔레비 꺼라 꺼. 다시 돌아본다.

나야. 요즘 축구하는 놈들을 보면 도대체가 넋나간 놈들 같아. 왜 그런지 아나? 한국놈들 스포츠하면 깡다구면 뭐든지 되는 걸로 알지. 그런 식으로 이제까지 버텨온 것도 사실 신기한 거지. 스포츠란 것이, 요즘에 어디 투혼 오기 불굴의 오뚝이정신 만으로 되는 거야? 여기가 이디오피아나 방글라데시야? 이제는 팀웍, 개인기, 기술, 작전, 뭐 이런 말들이 오가야 되는 시점 아냐? 무조건 투혼의 승리라야 된다니...브라질을 어떻게 이겨? 걔들은 기술이 저 앞에 가있는데...깡다구로 되냐? 그런 아프리카같은 신념이 우리 권투를 무너지게 했고 마라톤도 대충 무너지고 있고, 유도니 레슬링이니 다 폭싹 내려앉게할 거라구. 일본놈들 봐. 걔들 축구. 우리가 인젠 절대 못이겨. 걔들은 이제 기술축구야. 작전이 있는 팀들이라구. 우린 쨉이 안돼. 투혼의 대가리만 들이민다고 누가 겁내나? 월드컵, 돈과 깡다구로 유치하긴 했지만 걱정스럽지 정말.

녀석, 장광설이다. 나보다 더 흥분했군. 죽은 녀석이. 어쨌든 축구 탓에 시무룩한 기분이 되어 잠자리에 든다. 잠시 뒤척인다. 맥주나 한잔 할까. 그냥 잘까. 이불을 푹 덮는다. 자두자. 지난주 술자리가 잦아서 피로가 쌓였다. 휴. 요즘 뒷골 부근이 이상하게 땡기는데 이거 무슨 병 아닌가 모르겠군. 이 나이가 되면 무슨 병이 생길 때도 되었을 거야. 아냐, 피로해서 그런 거겠지.

나는 꿈을 꾼다. 어떤 여자와 걷고 있다. 모래밭이다. 푸른 바다가 펼쳐져있다. 시원하게 물살을 가르며 보트가 달리고 있고 갈매기들이 끼룩댄다. 모래는 기분좋은 열기로 발바닥을 자극하고 수많은 연인들 혹은 가족들이 파라솔 아래서 혹은 모래 속에 서로를 묻어주고 서로의 무릎을 베고 누워 노래를 부른다. 몇몇 십대 소년소녀들이 서로를 물 속에 빠뜨리려고, 밀고 껴안고 비명을 지르며 시시덕댄다.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 아줌마들은 커피 한잔 마시라고 혹은 시원한 맥주 한잔 하라고 바구니를 들이민다. 덜 말린 오징어도 있다고.

여자와 나는 어느 호젓한 기슭에 앉았다. 뒷편으로는 솔밭이 있고 바다 한복판에는 바위가 떠있다. 그녀의 머리칼에 기대어 잠시 조는 듯 꿈꾼다. 코를 킁킁거리며 머리의 샴푸향기를 맡은 뒤 그녀의 입술을 찾는다. 구름을 이불 삼아 태양을 베개 삼아 불타는 모래밭을 침대 삼아 흰 파도를 벽 삼아, 꿈이 뒤척이고 있는 중이다.

어? 그런데, 사람들이 모여드는군. 마치 김홍도의 씨름판 관중 그림처럼 팔짱을 끼고, 이리저리 궁금한 부분을 고개 비틀어 바라보기도 하고 성급한 몇 명은 박수를 치기도 안다. 아이 몇은 울고 소녀 몇은 입을 가렸다.

제기랄. 근데 자네는 여기 웬일이야? 쯧, 녀석. 잘 좀 살지. 그놈의 망상 언제나 벗을래? 사랑 만이 인간의 절망을 구제해줄 수 있다고? 미친 논리지? 그건 어쨌거나 도피일 뿐이야. 신의 노리개라는 확실한 증거지. 거기 있는 건 쾌락이라는 눈먼 미끼와 끝간데 모를 슬픔과 후회 밖에 없어. 고작해야 너의 일탈, 악을 행하고 있다는 확신에서 오는 불량끼 가득한 즐거움. 지루한 일상에 대한 삿된 반항끼. 그런 것들에 대한 결론없는 상상들로 너를 소모하는 거지. 주변에서 너를 바라보는 멍청이들을 봐. 그들은 시원한 바다와 섬으로 가고싶은 유혹도 떨쳐버리고, 모래밭의 후끈한 찜질도 잊어버리고 너의 욕망을 기웃거리고 있어. 그들도 너처럼 자신들을 던져버리고 싶은 거야. 도대체 그들이 뭘 보고싶어한다고 생각해. 혹시 죽고 싶다던가 멸망하고 싶은 꿈들로 가득찬 눈빛같이 보이진 않아?

아참, 그리고 자네 아내도 와 있네. 내가 모셔왔지. 제수씨에게 너의 꿈을 보여주고 싶었거든. 제수씨는 기꺼이 보고싶다고 말했어.

나는 등줄기에 박힌 모래들을 털어내며, 이마의 땀을 닦으면서 소스라치게 둘러본다. 눈자위가 벌겋게 되어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아내가 관중들 틈에 서있다. 나의 벌거벗은 몸에 서늘한 눈물 몇 방울이 툭 떨어진다. 소낙빈가? 하지만 아내는 아무 말도 없다. 분노의 표정도 질책의 표정도 아니다. 무표정이다.

죽은 녀석아. 왜 이러나? 왜 이런 짓을 하나? 날 괴롭히는 중인가? 내 욕망을 검열해서 뭘 하겠다고? 내가 살아가는 방식의 어리석음을 이런 식으로라도 경고해주고 싶었나? 나를 비난하고 싶었는가? 소크라테스가 들었다는 다이먼의 소리를 흉내라도 내고 싶은 건가? 너 때문에 내가 필요없이 지혜로워져야 하는가? 관심을 끊어. 이건 내 세상이야. 아직도 못버린 너의 상식, 너의 잣대, 너의 흥분, 너의 가치를 내게 강요하지 마라. 넌 죽었어. 이 꼬장꼬장한 친구야.

이제 돌아가. 내게도 좀 쉴 권리를 줘. 남의 사생활 넘나들면서 지옥에서 박사 학위 논문을 완성하고 싶은 건가? 난 너의 연구대상이 아냐. 그냥 저 파도 속으로 캐애애앵 달려가는 보트처럼 날아가버려.

허허허, 화났나? 충고 고맙네. 하지만 난 죽은 게 아닐세. 난 바로 자네일세. 자네의 욕망, 자네의 무의식, 자네의 혈기를 꺼내준 것일 뿐일세. 오해는 말게. 아무 뜻은 없어. 자네가 그렇게 역정을 내니 이상하게 내가 후련해지는군. 자네 말마따나 보트나 한번 타볼까?

몇 분 후에 승선자 없는 보트 하나가 하얗게 높아지는 파도를 거칠게 가르며 먼바다 쪽으로 달려간다. 나는 뒤척이며 또다른 잠을 잔다. 땡기던 뒷골이 어느새 편안해져있다.


이상국 기자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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