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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요일에 보는 경제사]고대 로마시대에도 주상복합 아파트가 있었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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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주상복합 아파트, '인술라(insula)'
층간소음 분쟁은 이미 그때부터 시작. 불법증축도 이어져
로마 대화재 이후 고도제한 법 생겨. 7층이상 못 짓기도



고대 로마시대 아파트 인술라의 재현도. 서기 64년, 로마 대화재로 고도가 7층으로 제한되기 이전에는 10층이 넘는 인술라도 많았다고 전해진다.(사진=위키피디아)

고대 로마시대 아파트 인술라의 재현도. 서기 64년, 로마 대화재로 고도가 7층으로 제한되기 이전에는 10층이 넘는 인술라도 많았다고 전해진다.(사진=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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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아파트라고 하면 19세기 이후 산업혁명기 서구에서 만들어진 공동주택, 아파트먼트(apartment)가 유입된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오늘날과 같은 형태의 아파트는 이보다 훨씬 전부터 만들어졌다. 고대 로마제국 때 이미 아파트는 존재했던 것.
로마의 아파트는 '인술라(insula)'란 공동주택이었다. 10층을 넘는 고층 인술라들도 이때부터 이미 존재했으며 당시는 전기로 움직이는 엘리베이터가 없다보니 고층일수록 값이 저렴했다. 나무와 벽돌, 진흙 등과 로마시대 사용하던 천연 시멘트로 만든 아파트는 제국의 중심지인 로마 시내는 물론 제국 각지 대도시에 퍼져있었다.

로마제국은 지중해 패권을 장악한 기원전 2세기 중엽 이후 인구가 급증해 서기 2세기로 넘어오면 인구가 8000만~1억명 수준까지 급격히 증가하게 됐다. 로마시는 인구가 이미 100만명을 넘어섰고 이에따라 주택보급 문제가 심해지자 인술라가 많이 건축되기 시작했다.

로마 시민들의 인술라 주거 재현도(사진=위키피디아)

로마 시민들의 인술라 주거 재현도(사진=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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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당시에도 주상복합체제가 구축돼있어 1층은 상가로 이용되곤 했다. 빵집, 식당, 식기를 파는 수공업점 등이 입점했으며 냄새가 많이 나는 피혁점이나 밤새 시끄러운 대장간이 입점하려고 하면 주민들이 들고 일어나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고 한다. 층간소음으로 싸우는 풍경도 익숙했다. 아파트 주민들이 사는 모습은 고대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았던 셈이다.
로마시의 인구 폭증으로 10층, 20층으로 불법 증축되던 인술라는 네로 황제 집권기 최악의 화재인 로마 대화재가 발생한 서기 64년 이후, 로마정부의 강력한 규제로 고도제한법이 생겼다. 이후 모든 인술라는 7층 이상 짓지 못하게 했다. 로마 대화재 당시 너무 높이가 높은 인술라들의 옥상에서 불을 신속히 진화하지 못하면서 순식간에 불이 번져 로마시의 9개 구역 중 7개가 불에 타버렸기 때문이었다.

당대 정치인들이나 부유층들은 인술라를 대량으로 구매해 임대업에 나서기도 했다. 불법 증축에 부실공사도 판을 쳤고 업자들간 뇌물을 주고 받았다는 내용도 상당히 많이 발견됐다고 한다. 로마 공화정 말기의 정치인이었던 키케로도 자신이 보유한 인술라가 노후로 붕괴되자 더 높은 인술라를 지어 돈을 벌수 있겠다고 좋아했다는 기록까지 있다. 보통 서구의 이런 아파트에는 하층민들이 살았으므로 세입자들의 고생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던 것.

1000년이 넘은 중세시대 예멘의 아파트 단지, 시밤의 모습(사진=위키피디아)

1000년이 넘은 중세시대 예멘의 아파트 단지, 시밤의 모습(사진=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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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중동에서도 중세시대부터 아파트가 급증하기 시작한다. 원래 인구가 그리 많지 않던 사막지역에서 아파트는 드물었지만 카이로, 바그다드, 예멘과 같이 교역로 상에 위치한 대도시들은 인구가 급증하면서 아파트들이 늘어났다. 오늘날까지 남아있는 아파트로는 1000년 이상의 역사로 인해 세계 문화유산으로까지 등재된 바 있는 예멘의 '시밤(Shibam)'이 있다.

아파트의 외양이 주로 서구와 중동 쪽에서 왔다면, 오늘날 벽지를 바르고 벽을 나눈 아파트의 내부는 동양에서 나왔다. 현대식의 실내 내장은 17세기 일본에서 비롯됐다. 일본은 임진왜란 이후 에도 막부가 들어서고 장기 평화가 찾아오면서 상업이 발전했고 대도시 인구가 급증했다. 막부가 있던 중심도시 에도는 인구 50만을 넘어서기도 했다. 이에 따라 각 지역에서 상업의 중심이 되는 '조카마치(城下町)'란 구역을 중심으로 오늘날 빌라와 같은 공동주택들이 성행하게 됐다. 이러한 주택형태가 당시 일본과 교역하던 네덜란드를 비롯해 유럽으로 전파됐고, 이전에는 벽지 개념이 따로 없던 유럽 주택의 변화에도 영향을 끼쳤다.

일본 히라도성의 조카마치 거리. 에도시대 이후 각 도시의 상업지구로 번영했던 조카마치에는 공동주택이 많이 들어섰다.(사진=위키피디아)

일본 히라도성의 조카마치 거리. 에도시대 이후 각 도시의 상업지구로 번영했던 조카마치에는 공동주택이 많이 들어섰다.(사진=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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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정작 아파트의 본 고장인 서구나 일본에서는 아파트가 서민층의 주거공간으로 발전해 단독주택에 비해 고급화가 이뤄지진 않았는데 비해 미국의 대도시에서는 초고층 아파트가 부의 상징으로 발전했다. 뉴욕, 시카고, 필라델피아와 같은 대도시 아파트들을 중심으로 아파트가 발전한 미국은 높이 200m 이상 마천루 빌딩들에 초호화 아파트가 펜트하우스나 로열층으로 분양되기 시작했다. 아파트 내부에 수영장, 전망대는 물론 영화관이 들어서기도 한다. 고급 주상복합이란 개념도 미국에서 출발했다.

서울 강남구 도곡동 타워팰리스 전경(사진=아시아경제DB)

서울 강남구 도곡동 타워팰리스 전경(사진=아시아경제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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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구대륙과 신대륙의 아파트 문화를 가장 많이 응축시킨 아파트가 바로 현대 대한민국의 아파트다. 한국 아파트는 전 세계에 유래가 없을 정도로 고급화의 길을 걸어왔으며 각국의 문화가 뒤섞여 독특한 형태의 주택문화로 발전해왔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내재화 된 일본식 주택에 서구식 아파트 문화가 합쳐지고 전통적인 한옥구조와 온돌이 함께 들어오면서 아주 독특한 고급 브랜드 아파트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한국 아파트의 실내 구조는 일반적으로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넓은 거실이 나오고 방은 거실을 중심으로 분산배치되는 구조다. 사실 이것은 전통 한옥에서 안마당과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방이 분산되는 형식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서구나 일본의 아파트 구조에서는 보통 길쭉하고 좁은 복도를 지나 거실과 부엌이 분리된 형태로 나오고 거실엔 보통 문이 달려있다. 외국의 문물을 가져와도 수천년을 살아온 생활문화를 완전히 뒤바꿀 수는 없다는 사실은 우리가 사는 아파트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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