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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임 라이트]내 영혼이 한 뼘 더 자란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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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이수경, 소녀 같은 풋풋함 뒤에 숨은 열정
"사람을 알아가며 천천히 연기할래요"

배우 이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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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한 소녀가 강가에 쪼그리고 앉아 있다. 고개를 숙이고 손바닥으로 휘휘 얕은 물을 젓는다. 여러 가지 문제로 고민이 많다. 알아주는 사람은 친구 문희(장햇살)뿐이다. "너 체육(선생님)이랑 티 좀 그만 내. 다 들키겠다." 속내를 들켜버린 소녀는 빙그레 웃는다. "티 나냐?"

거짓이나 꾸밈이 없는 해맑은 얼굴. 영화 '용순'에서 배우 이수경(21)이 연기한 용순이다. 애써 감정을 숨겨도 티가 난다. 주위를 고려하지 않고 막무가내로 행동하지만, 누구보다 순수한 열여덟 살 소녀다. 격한 사춘기를 겪으며 다양한 얼굴을 드러낸다. 그중 몇몇은 클로즈업 샷에 담겨 관객에게 싱그러운 매력을 전한다. 이수경이 마음을 사로잡아 끄는 힘으로 봐도 좋다. 그녀와 용순이 많이 닮았기 때문이다.
"용순의 행위를 충분히 이해하고 연기했어요. 저도 그 시절 다중인격이 의심될 만큼 기복이 심했거든요. 아빠한테도 무뚝뚝하게 굴었고요. 친구들과 어울려 즐거운 시간을 보내도 내 편이 없는 것 같아 외로웠어요."

영화 '용순' 스틸 컷

영화 '용순'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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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순이 기댈 수 있는 곳은 문희의 어깨뿐이다. 체육선생에게는 다른 여자가 생겼고, 아빠는 엄마 없는 딸을 위한답시고 몽골에서 새 엄마를 데리고 왔다. 이수경은 용순이 느낄 감정이 복잡하고 미묘하다고 생각했다. 공부하듯 분석해서는 진심이 나올 수 없다고 보고 자신의 과거를 투영했다.

"다양한 감정을 한꺼번에 보여주는 샷이 여러 개 있어요. 가장 두드러진 감정으로 무게중심을 잡았어요. 단편적으로 나타날까 두려웠지만, 용순과 과거의 나를 이해하며 몰입하다 보니 부수적인 감정들이 자연스럽게 피어났어요."
새 엄마가 사준 자전거를 걷어차 망가뜨리는 신이 대표적이다. 아빠와 새 엄마는 물론 체육선생에 대한 불만이 폭발하는데, 새 엄마가 자전거 앞에 주저앉자 불편하고 미안해한다. "저 역시 누구를 만나 어떤 대화를 하느냐에 따라 감정이 뒤죽박죽 섞여서 나타나요. 인지하지 못한 감정이 드러나기도 하고요. 자연스런 연기만이 당위성을 부여할 수 있죠."

영화 '용순' 스틸 컷

영화 '용순'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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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타운(2014년)'에서 쏭을 연기할 때만 해도 이수경에게서 이런 여유는 찾아볼 수 없었다. 모든 동선과 표정 연기를 예측하고 분석했다. 그래서 촬영 환경이 조금만 달라져도 눈앞이 캄캄해졌다. "편집 과정에서 삭제됐는데, 일영(김고은)과 쏭이 동대문 쇼핑몰을 돌아다니며 수다를 떠는 신이 있었어요. 아주 일상적인 촬영이었는데, 구경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니까 부담이 됐어요. 연기를 할 수 없을 정도로요. 촬영을 마치고 자괴감을 느꼈죠."

이수경은 이듬해 출연한 드라마 '호구의 사랑(2015년)'에서 해결책을 찾았다. 영화보다 빠르게 진행되는 촬영장에서 이리저리 치이면서 유연성을 길렀다. "촬영 전 표민수 감독(53)이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말라고 조언했는데, 돌아가는 속도를 보니 이해가 됐어요. 생각할 겨를조차 없더라고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정신없이 빠져들다 보니 연기가 훨씬 자연스러워졌어요."

이제는 첫 신과 마지막 신을 연이어 연기할 만큼 능수능란해졌다. 카메라가 코앞까지 오는 근접촬영에서도 놀라운 집중력을 발휘한다. 배역이 하나의 사건을 겪으며 달라지는 점도 세부적으로 표현할 줄 안다. 용순에서 운동장을 달리는 자세가 그렇다. 땅바닥을 보며 걸음을 재촉해오다, 마지막에는 고개를 빳빳이 들고 따가운 햇살을 응시한다. 아픈 만큼 성숙해져 새로운 삶을 맞는다는 암시다.

영화 '용순' 스틸 컷

영화 '용순'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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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과 행동이 너무 달라지면 어색할 것 같았어요. 용순을 연기하면서 느낀 그대로를 담아 뛰었죠. 아마 용순도 확연히 달라지진 않았을 거예요. 마음에 변화가 생겼겠지만, 평소처럼 강가에서 문희를 만나 수다를 떨지 않았을까요."

출연 제의가 많아졌지만 그녀 역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차분한 걸음으로 순탄한 길을 걷고 있다. "조바심을 내기에는 아직 많이 부족하죠. 갑자기 속도를 올리면 실력이 탄로나 버릴 거예요. 사람을 알아가며 천천히 연기하고 싶어요. 다양한 배역을 그리며 삶을 알아간다면 언젠가 좋은 사람이 되어 있지 않을까요."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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