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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부끄러움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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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박철응 기자]“대답을 원하는가?” “진실을 원합니다” “넌 진실을 감당할 수 없어!”

둘 다 ‘진실’이라는 단어를 쓰지만, 두 사람은 밑바닥부터 다르다. 한 사람은 약함이 죽음의 이유가 될 수 없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시각에서 진실을 파고든다. 다른 한 사람은 다수의 존립을 위해서라고 믿으며, 때로 누군가의 약함은 죄가 되고 척결해야할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인식한다.
1992년 개봉했던 롭라이너 감독의 ‘어퓨굿맨’ 중 제셉 대령(잭 니콜슨)과 캐피 중위(톰 크루즈)가 나눈 대사다. 군 법무관 캐피 중위는 쿠바 관타나모에 있는 미군 부대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을 파헤치려 하고 제셉 대령은 덮으려 한다. 군대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병에 대해 동료 사병들이 폭력을 써서라도 ‘집중관리’하라는 ‘코드레드’ 명령을 내린 장본인이 제셉 대령이었다.

그는 법정에서 결국 흥분한다. “너희 같은 애송이들은 내가 지켜주는 덕에 자유를 누리고 사는 거야” 진실마저 터뜨린다. “그래 했다. 내가 코드레드를 명령했다. 그래서 어쨌다는거야. 나라가 어떻게 지켜지는 줄 알아. 그렇게 해서 나라가 지켜지는거야. 알겠어?”

국가주의 가치관으로 똘똘 뭉친 군인의 표상이었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진실은 "내 덕에 지켜지는 나라"가 아닐까. 한국인들에게는 특히 낯설지 않다. "적과 대치하고 있다"는 이유로 자유, 권리, 인권 같은 단어가 더없이 짓이겨졌던 과거를 갖고 있다. 가깝게는 이른바 ‘태극기 집회’에도 한국판 '제셉 대령'들이 넘쳐났다.
국방부의 사드 배치 보고 누락에 대해서는 ‘항명’ 의혹이 짙어지고 있다. 국민이 선출했으며 국군통수권자인 대통령에게 만약 중대 사안의 보고를 의도적으로 빠뜨렸다면 군 조직을 초월적 존재로 여기는 이들이 있는 셈이다. 하지만 상식에 발 딛지 않은 그들만의 소신, 그들만의 명예는 적폐에 다름 아니다. 국방부와 군은 대한민국 민주공화국의 틀 안에 존재하는 것이다. 초월적 존재가 아니다. 또 끊이지 않는 추문과 방산비리만 보더라도 군의 명예와 신뢰는 스스로 갉아먹은 바가 크다.

2006년 말 당시 대통령의 일갈이 다시금 떠오른다. “작전 통제도 하나 제대로 할 수 없는 군대를 만들어놔놓고, 나 국방장관이요, 나 참모총장이요…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10년이 넘게 흘렀다. 항명은 가장 부끄러워 해야 할 일임에 틀림없다. 여전히, 그리고 다시, 그들이 화두다.




박철응 기자 her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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