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나라는 실재가 확인된 최초의 중국 왕조인데 그 역사는 기원전 1600년경에 시작돼 기원전 1046년경에 막을 내린다. 마지막 도읍이 은(殷)이어서 은나라라고도 한다. 상나라에는 온갖 제사가 많았다. 제사를 지낼 때 점을 쳐서 과정을 확인하고 신탁과 은혜를 청하였다.
'벌십강(伐十羌)'을 새긴 갑골이 있다. '강족(羌族) 사람 열 명의 목을 베다'라는 뜻이다. 강족은 고대 중국의 서북부에 터를 잡은 민족이다. '피부가 흰 강족 사람 세 명을 제물로 삼으리까(唯用三白羌于丁)'라는 글귀가 남아 백인(白人)으로 추정하는 학설도 있다.
'伐十羌'의 '伐'은 오늘날 '칠 벌'로 사용하지만 본디 '목을 자르다'라는 뜻이다. 글자의 모양은 창(戈)을 들어 사람(人)의 목을 막 베려는 순간을 표현했다. 인신을 바치는 행위는 고대 세계 어느 곳에서든 가장 신성한 제의에 속했다. 상에서는 강족 사람의 목을 벰으로써 제의를 완성했다.
전국시대 조(趙)나라의 장군 염파는 혜문왕이 환관의 집 식객에 불과하던 인상여를 중용하자 불만을 품었다. 인상여를 만나면 단단히 망신을 주리라 공언했다. 인상여가 염파의 뜻을 알고 마주치치 않으려 피해 다녔다. 아랫사람이 왜 그토록 염파를 두려워하느냐고 물었다.
"진(秦)나라가 우리를 공격하지 못하는 이유는 나와 염장군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다투면 나라가 위태로워진다."
염파가 그 말을 전해 듣고 크게 뉘우쳤다. 옷을 벗고 형구(荊具)를 짊어진 채 인상여를 찾아가 섬돌 아래 꿇어앉아 빌었다. 사마천은 <열전>에 기록하기를 이 일로 두 사람이 문경지교(刎頸之交)를 나누었다고 하였다. 목이라도 베어 바칠 정도로 막역한 사이라는 뜻이다.
스스로 목을 바침은 상대를 가장 소중한 것을 바쳐 지켜야 할 지고한 가치로 받아들이는 행위다. 조선의 첫 천주교 사제 김대건은 참수(斬首)를 당했다. 교회는 그의 죽음을 순교(殉敎)로 규정한다. 목은 고사하고 터럭 한 올 바칠 데 없는 시대는 불행하다. 가치가 실종된 시대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몇 회에 걸쳐 목 이야기를 하겠다. 참혹하고도 매혹적인 인간 역사, 고귀함과 비루함이 올림픽 메달처럼 주렁주렁 매달린 그 곳.
문화스포츠 부국장 huhb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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