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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길의 영화읽기]지구 온 외계인, 침공일까 친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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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니 빌뇌브 감독의 '컨택트'와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E.T.'

영화 '컨택트' 스틸 컷

영화 '컨택트'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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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ET는 지구에 홀로 남는다. 처음 마주친 인간은 꼬마 엘리엇(헨리 토마스). 제법 수월하게 소통한다. 시작은 보디랭귀지. 엘리엇처럼 왼손으로 코를 문지르고, 검지를 펴 까닥한다. 서로의 순수한 마음에 경계는 눈 녹듯 사라진다. 졸음이 밀려들자 함께 잠을 잔다. 다음날 아침, 엘리엇은 다정하게 말을 건다. "말을 하니? 말이 뭔지 알아? 난 인간이야. 엘리엇이라고 해." ET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대신 엘리엇의 물건에 관심을 보인다. "이건 콜라야. 마시는 거. 음료수 알지? 이건 장난감이야. 스타워즈에 나왔던 거." 외계생명체가 지구인의 언어를 이해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들의 언어에 지구인의 체험이 담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ET처럼 입이 있다고 해도 발음을 알아들을 확률조차 적다. 하지만 ET는 마침내 영어를 한다. 자신의 별로 돌아가기 직전 엘리엇의 이마에 검지를 대고 천천히 입을 연다. "나는 바로 여기 있을 거야."

영화 'E.T.' 스틸 컷

영화 'E.T.'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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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스필버그 감독(71)은 'E.T.(1982년)'에서 이들의 순수한 우정을 통해 동심과 환상의 세계를 제공한다. 그가 제시하는 소통의 열쇠는 무엇이든 포용할 수 있는 아량이다. 지난 2일 개봉한 드니 빌뇌브 감독(50)의 '컨택트'도 이 점을 강조한다. 전 세계에 갑자기 나타난 거대한 반구형 셸 열두 개. 외계생명체가 지구에 온 이유를 파악하기 위해 언어학자 루이스 뱅크스(에이미 아담스)와 물리학자 이안 도넬리(제레미 레너)가 투입된다. 자궁을 연상케 하는 공간 속 외계생명체의 외형은 다리가 일곱 개로, 문어와 흡사하다. 뱅크스는 '헵타포드(Heptapodㆍ다리 일곱 개)'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엘리엇처럼 두려움을 떨쳐내고 자신이 누구인지부터 밝힌다. "인간. 인간. 난 인간이에요. 당신은요?" 존중과 소통 의지에 헵타포드는 반응한다. 먹물 같은 물체로 원형을 기본으로 한 비선형 문자를 그린다. 인간의 언어와 달리 시작과 끝이 없고, 순서에 따른 단어의 배열도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이미 알고 말한다. 과거와 현재, 미래를 동시에 인식하는 종족이다. 뱅크스는 이 언어를 익히면서 그들처럼 사고하게 된다.
영화 'E.T.' 스틸 컷

영화 'E.T.'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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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설정은 '사피어ㆍ워프의 가설(Sapir-Whorf hypothesis)'을 전제로 한다. 이 영화의 원작소설인 테드 창(50)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의 얼개로, 언어 구조나 실제로 사용하는 언어의 형식이 사용자의 사고에 영향을 미친다는 학설이다. 빌뇌브 감독은 "자신이 이미 결정된 시간에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뱅크스가 관객에게 멋진 질문을 던진다"고 했다. 헵타포드처럼 목적지를 이미 아는 삶을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느냐는 물음이다. 뱅크스는 어린 나이에 죽을 딸의 모습을 인지하고도 자신의 미래를 겸허히 받아들인다. 또 헵타포드어의 번역 방법을 담은 책을 출간해 많은 이들에게 전파한다. 헵타포드가 지구에 온 이유이자 인류에게 주는 선물이다.

영화 '컨택트' 스틸 컷

영화 '컨택트'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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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뇌브 감독은 아직 우리가 선물을 받을 준비가 덜 됐다고 보는 듯하다. 영화의 또 다른 갈등 요소로 점점 영향력을 넓혀나가는 중국의 군사적 위협을 넣었다. 군 통수권자가 외계생명체에 선전포고를 하고, 러시아ㆍ수단ㆍ파키스탄 등이 뒤를 따른다. 미국마저 포기한 상황에서 끝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건 뱅크스뿐이다. 인류의 역사도 그렇게 흘러왔다. 인디언들을 말살한 미국처럼 새로운 문명과 조우할 때마다 전쟁과 약탈을 서슴지 않았다. 35년 전 E.T.에서 엘리엇은 개구리 해부 학습을 거부한다. ET의 얼굴을 떠올리며 클로로포름에 마취된 개구리들을 모조리 풀어준다. 반면 과학자들은 ET를 해부해 새로운 정보를 얻는데 혈안이 돼 있다. 타인에 대한 배타심이나 이기심은 여전히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ET를 고향으로 온전히 보내주려면 더 많은 이해와 배려가 필요하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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