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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길의 영화읽기]송강호는 있지만 김지운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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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개봉한 김지운 감독의 '밀정'

영화 '밀정'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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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러독스와 자의식 담긴 연출 실종…서스펜스 헐겁고, 원통함만 남아
반어적인 화법 구사도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에 못 미쳐


[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김지운 감독(52)이 만든 영화의 매력은 패러독스(역설)이다. '장화, 홍련(2003년)'은 새엄마 은주(염정아)와 수연(문근영)ㆍ수미(임수정) 자매의 갈등을 다루지만 알고 보면 아버지 무현(김갑수)의 수난사다. '달콤한 인생(2005년)'에는 '상사의 말을 잘 듣자'는 현실적인 메시지를 숨겨 놓았다.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년)'에는 세 인물 간 대결의 승자가 결국 일본임을 명시했다.
이 작품들을 본 관객은 7일 개봉한 '밀정'에 고개를 갸웃할 수 있다. 이야기가 차갑게 전개되다 뜨겁게 흐르고 만다. 특히 독립투사들의 헌신과 고통을 담은 신에서는 경외감마저 든다. 패러독스는 없다.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에서 쫓고 쫓기는 인간 군상을 담으려고 그린 황야의 질주 신과 같은 자의식이 담긴 연출도 전무하다.

김 감독은 "차가운 느낌의 느와르를 만들려고 했는데 뜨거워지고 말았다"고 했다. 당초 표현하고자 한 것은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2011년)'의 묵직함과 짙은 감성이었다. 토마스 알프레드슨 감독(51)은 냉전시대 스파이들의 일상을 차분하게 쫓으며 그들의 비애와 고독에 주목한다. 김 감독은 영국 출신의 소련 이중간첩 킴 필비에서 따온 빌 헤이든(콜린 퍼스)에게서 무대를 일제강점기로 옮겨도 된다는 가능성을 확인했을 것이다. 이정출(송강호)은 친일파 경찰이다. 의열단의 리더 김우진(공유)에 포섭돼 얼떨결에 이중 스파이 노릇을 한다.

영화 '밀정'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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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정은 폭탄을 상해에서 경성으로 운반하는 과정에서 또 다른 스파이를 배치한 것을 포스터 전면에 내걸었다. 사실 맥거핀(이야기의 흐름에 관련이 있는 것처럼 등장해 관객에게 혼란을 주거나 호기심을 자극하는 속임수)에 불과하다. 김 감독은 이정출의 심리 변화와 또 다른 친일파 경찰 하시모토(엄태구)와의 대립 구도에 더 많은 공을 들인다. 특히 아픈 시대를 살아가는 그의 인간적 고뇌에 자주 카메라를 가져간다. 그런데 이 채색에서 김 감독은 이정출의 감정을 모두 드러내고 만다. 그래서 서스펜스로서의 기능은 헐겁고, 다른 인물들은 원통함만 남는다. 이정출을 통해 꺼낼 수 있는 다양한 가능성을 스스로 제한했다. 김 감독은 "감정을 보여주지 않다가 한순간에 무너지는 걸 선호하는 편인데, 실패의 서사 속 인물들을 다루다보니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비통해졌다"고 했다.
일부 관객은 이정출의 심리 변화가 갑작스럽게 이뤄진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김 감독의 이전 영화에 비해 개연성은 오히려 뚜렷하다. 이정출은 첫 등장에서 의열단원이자 친구인 김장옥(박희순)을 생포하라고 지시한다. 끝까지 그를 설득하려고 애쓰지만 눈앞에서 자살을 목격하고 만다. 김우진과 의열단장 정채산(이병헌)은 이 트라우마를 계속 건드린다. 여기에 더해지는 하시모토의 성장은 그의 마음을 흔들기에 충분해 보인다.

영화 '밀정'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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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감독은 이정출의 고민이 절정에 이르는 순간마다 웃음이 새어나오는 장치를 마련한다. 그의 전매특허 연출이다. 관객의 긴장을 가라앉히면서 슬며시 인물의 감정을 숨긴다. 그런데 이번 영화는 스파이를 다룬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 세기가 약한 편이다. 그래서 의열단이 구속되는 신에서 흘러나오는 루이 암스트롱의 노래(When you're smiling)와 폭발 신에 깔린 라벨의 '볼레로' 등이 세련미만 부각하는데 머문다. 그는 다른 신에서 반어적인 화법을 구사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진위 여부를 알기 어려운 도자기, 불상 등 직접적인 미장센에 집착했다. 김 감독이 일제강점기라는 시공간을 활극의 무대로 가져온 것에 불과하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이유다. 여러 차례에 걸쳐 분위기를 조성하고서 마지막에 훌리오 이글레시아스의 노래(La Mer)를 배치한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와의 차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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