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먼 레브레히트 '거장신화'
그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오스트리아 빈에서 활동하다가 음반기획가에 이끌려 영국 런던의 '스튜디오'에서 주로 작업했다. 평소 카라얀은 녹음 스튜디오를 경멸했으나 곧바로 클래식 음악의 상업 노선에 편승했다. 스튜디오는 그의 음악적 미래를 열어줬을 뿐만 아니라 사실상 나치 전범이라는 경력을 가려줬다. 이처럼 과거를 세탁한 그는 엄청난 부와 음악적 복권을 누릴 수 있었다. 그는 늘상 나르시즘에 취해 있었으며 주변에는 동성애자들이 들끓었다. 요트와 스포츠카를 몰았고, 아내에게는 피카소, 르느아르의 그림은 물론 커다란 보석을 서슴없이 선물할만큼 사치스러웠다. 또한 왕의 행렬처럼 수행원, 헤비급 권투선수 출신 경호원 등을 거느리고 다녔다.
결국 음반산업의 팽창은 음악 권력, 돈과 명예를 소수에게 집중시켰다. 또한 새로운 지휘자의 등장을 봉쇄했으며 연주의 질을 표준화시켰다. 지휘 전통은 허물어졌고 오케스트라는 생존에 급급, 클래식 음악의 위기로 이어졌다.
영국 음악평론가이자 소설가인 '노먼 레브레히트'가 쓴 '거장 신화-클래식 음악의 종말과 권력을 추구한 위대한 지휘자들'이라는 저술은 오늘날 클래식 음악의 위기를 한 세기에 걸친 지휘자들의 절대권력에서 비롯됐음을 밝혀낸다. 또한 위대한 지휘자에 대한 숭배, 즉 '마에스트로 현상'이 거대 음악산업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설명한다.
클래식 음악계는 절대권력 '지휘자'의 역할에 대해 지금껏 논쟁중이다. '작곡가의 충실한 전달자인가 ? 또다른 창조자인가 ?' 저자는 이 책에서 지휘자에게 무릎 끓은 작곡가들의 이야기를 실감나게 풀어낸다. 또한 위대한 거장들의 뒷 담화, 부패상 등을 흥미롭게 펼치고 있다.
1950∼60년대 클래식 음악은 음반 판매량의 30%를 차지했다. 그러나 오늘날 클래식 음반 비중은 3∼4%에 불과하다. 또한 이름값만으로 콘서트장의 티켓을 매진시키거나 음반이 팔리게 하는 지휘자들도 거의 없다. 클래식 음악은 마침내 절벽을 향해 움직이고 있다. 이에 저자는 "지휘권력의 극대화"가 그 원인이라고 분석한다. 영화·드라마 등 영상, 대중음악의 성장 그리고 인터넷시대로 상징되는 사회 환경, 이윤 추구에 급급한 음악 산업도 클색식 음악을 몰락시키는데 일조했다고 설파한다. 그러나 저자는 "지휘자 권력이 음악계 내부에 균열을 가함으로써 민주적 소통 및 음악 본연의 정신 등을 잃게 한 것이 클래식 음악을 몰락시킨 근본 원인"이라고 강조한다.
따라서 이 책은 단순히 음악 관련서로 읽혀지지만은 않는다. 오히려 권력의 성장과 몰락이라는 인문학적 고찰이 돋보인다. 순수예술의 결정체인 클래식 음악을 통해 권력의 면모를 새롭게 들여다볼 수 있다. <노먼 레브레히트 지음/김재용 옮김/펜타그램 출간/값 2만8000원>
이규성 기자 peac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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