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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장칼럼] 정부보다 더 미더운 말 한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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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겨울,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아이의 사진을 붙여 사립 S초에 지원서를 낸 건 순전히 '엄마를 오라 가라 부르지 않는 학교'라는 이유에서였다. 아이가 오후 늦게까지 돌봄교실에 있을 수 있고, 학부모가 학교에 갈 일이 거의 없어 맞벌이 엄마들이 선호하는 학교라는 얘기에 귀가 쫑긋했다. 6대 1에 가까운 경쟁률에 밀려 추첨에 떨어진 뒤 "그래, 학비가 만만치 않아 부담됐을거야"라며 스스로를 위로하기엔 아쉬움이 남았다.

아이가 학교 끝나고 집에 올 때가 지났는데 사라졌다는 베이비시터 이모님 전화에 회식 자리를 박차고 뛰쳐나간 선배 모습이 엊그제 같은데 어쩌면 이제 내 일이 될지 모른다. 분명 학교에서 보내온 안내문엔 '맞벌이 가정을 위해 야간상담도 진행합니다'라고 써 있는데 전화기 너머 아이의 담임교사가 "저도 집에 돌봐야 할 아이들이 있어서요"라며 겸연쩍어 하는 바람에 겨우 오후 반차를 내고 학교에 들른 동료도 있었다.
해마다 2월 말이면 자녀의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회사 생활을 포기하는 경력단절 여성이 늘고 있다는 통계도 기사에서 똑똑히 읽은 기억이 있는데, 정작 예비 학부모로서의 위기감을 느끼게 한 건 정부가 이달 초 발표한 '1학년 학부모 10시 출근제'였다.

대통령직속 저출산고령화위원회가 초등 입학생 자녀를 둔 공공기관 근로자의 출근시간을 오전 10시로 늦추도록 하는 방안을 당장 3월부터 시행한다고 선언한 터였다. 초등 1학년 자녀를 둔 학부모는 아예 10시 출근을 원칙으로 하겠다는 정부의 강한 의지는 역설적으로 '오죽하면 맞벌이 1학년 엄마들만 콕 집어 이런 고육책을 내놓는가' 싶은 생각이 들게 했다.

사기업, 중소기업 재직자들 사이에선 "엄마가 공무원이 아니라서 미안해"라는 푸념이 터져나왔고, "10시 출근까진 바라지도 않는다, 학교 돌봄교실이나 100% 수용해 달라"는 냉소 섞인 외침은 곧 실현 불가능한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정부가 지역아동센터나 공동육아나눔터 등을 총동원해 초등학생들을 돌보겠다고 했지만, 학교가 아닌 다른 장소로 혼자 이동하는 것 자체가 1학년 아이들에겐 위험천만한 일이다. 정부에서 관리하는 아이돌보미가 부족하니 돌보미 1명이 인근의 서로 다른 가정의 아동 2∼3명을 함께 돌보도록 하겠다는 얘기에 엄마들은 아연실색했다.

이제 입학은 열흘도 채 남지 않았는데 기대만 잔뜩 안겨주고 언제부터 어떻게 적용할지, 가능은 한 일인지 가늠조차 안되는 정책은 또다시 나중을 기약해야 할 처지다. 아니 그마저도 차츰차츰 공기업에서 사기업으로, 다시 우리 사회 전반으로, 1학년 뿐 아니라 돌봄이 필요한 모든 아이들에게로 확산될 수 있다면 그래도 기다릴 수 있다.

"어머님, 매일 방과후수업 하나씩 받고 있으면 제가 시간 맞춰 데려갈게요." 초등학교 정문에서 아이들을 직접 인솔해 태워갈테니 걱정 말라는 태권도장 차량기사님의 말 한마디가 아직은 멀어 보이는 4∼5가지 정부 정책보다 오히려 위로가 된다.

조인경 사회부 차장 ikjo@




조인경 기자 ikj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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