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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학생 동원, 평창에서 재현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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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8월29일 오전 11시, 대구스타디움. 섭씨 30도를 넘는 더위 속에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400m 남녀 허들 예선이 열렸다. 관중석은 빈자리를 찾기 어려웠다. 대부분 대구와 경산 지역 초ㆍ중ㆍ고교와 특수학교 학생들. 대회 조직위원회와 대구시교육청이 현장체험학습이란 명분으로 불러들였다. 한 중학생은 "경기를 안 보면 출석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했다. 학생들이 앉은 자리에는 한여름 태양이 쏟아졌다. 그늘로 옮길 수도 없었다. 인솔교사들이 '대형'을 유지해야 한다며 막아섰다. 학생들은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지쳐 늘어졌다. 화장실에 간다며 하나 둘 자리를 비우더니 경기장 복도에 삼삼오오 모였다. 수다를 떨거나 휴대폰 게임을 했다. 몇몇은 바닥에 주저앉아 책을 펴고 공부했다. 교사들은 이들을 나무라면서도 안타까워했다. "세계적인 대회를 볼 수 있어 기쁘지만, 애들이 너무 고생해요."
고단함은 관람 뒤에도 이어졌다. 관중석을 빠져나온 학생들이 셔틀버스를 타려고 정류장에 벌떼처럼 몰려들었다. 버스기사들은 출입문을 열지 않은 채 줄을 바르게 서라고 소리쳤다. 버스는 많지 않았다. 기다리다 지친 학생들은 서너 명씩 짝을 지어 택시를 잡았다. 택시도 많지 않았다. 겨우 잡아도 자원봉사자들이 외국인을 먼저 태워야 한다며 가로챘다. 결국 많은 학생들은 찜통더위 속에 지하철역을 향해 2㎞ 이상 걸었다. 한 고등학생은 "힘들고 지루했다. 아는 선수가 없는데, 경기가 잘 보이지도 않았다. 학교에서 공부를 하는 편이 나았을 것 같다"고 했다. 육상 경기가 즐거운 기억으로 남을 리 만무했다.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비슷한 일이 벌어질 것 같다. 교육부는 서울ㆍ강원 등 전국 초ㆍ중ㆍ고교와 특수학교 학생 19만 명에게 올림픽ㆍ패럴림픽 관람 비용을 지원한다. 책정한 지원액은 1인당 10만원(부산ㆍ울산ㆍ경남ㆍ전남 14만원, 제주 25만원). 경기 입장권을 사고 교통, 식사, 숙박비까지 해결하려면 따로 돈을 걷을 수밖에 없다. 인기 종목의 경기를 관람할 수도 없다. 그런 경기는 입장권이 매진됐다. 서울의 중학교 교사 A씨는 "쇼트트랙이나 스피드 스케이팅은 못 본다. 판매율이 저조한 종목의 저녁 시간대 예선만 입장권이 남았다"고 했다. 경기도의 중학교 교사 B씨는 "교사와 학생들이 당일치기 일정에 부담을 느껴 관람을 포기했다"고 했다. 그는 "학교에서 숙박을 고려했으나 추가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마땅한 숙소를 구할 수도 없었다"고 했다.
교육부는 이런 상황을 파악하고 지난 22일 "많은 학교가 당일 관람을 하기 좋은 시간대(11~15시)에 신청을 했다. 시ㆍ도교육청이 추가해 달라고 해서 평창 동계올림픽조직위원회에 이 시간대 경기 입장권 2만 장을 더 확보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했다. 대부분 판매가 저조한 종목의 예선 입장권이라고 한다. 이래서는 학생 동원이라는 구태행정으로 학교에 부담을 떠넘긴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겨울방학에 현장체험학습을 하는 셈이라 교사들의 불만도 크다. A씨는 "방학에 업무를 줄이는 추세에서 벗어난 불합리한 조치"라고 했다. B씨는 "학생들이 단체로 이동하면 사고가 날까 항상 염려가 된다. 사고가 나면 학교만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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