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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명칼럼]교황과 맨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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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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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가톨릭 교황의 '낙수효과(트리클다운)' 비판이 화제다. 교황은 지난달 말 '복음의 기쁨'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교황권고'에서 이것을 가리켜 "자유시장으로 경제성장을 촉진하면 세상에 더 큰 정의와 통합을 가져올 수 있다는 가설"이라며 "그러나 사실로 확인된 적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것은 경제권력을 휘두르는 자들의 선함과 신성화된 지배적 경제체제의 작동에 대한 조악하고 순진한 신뢰의 표현"이라고 했다.

사회경제 현실을 여러모로 비판하는 가운데 나온 말이다. 교황은 "오늘날 배제와 불평등의 경제에 대해 그래서는 안 된다고 말해야 한다"며 "그런 경제가 사람을 죽이고 있다"고 했다. "고대의 황금송아지 숭배가 돈 숭배와 인간적 목적을 결여한 비인격적 경제의 독재라는 새로운 가면을 쓰고 되살아났다"고 했다.
그러자 이를 시장경제와 자본주의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인 사람들이 반격에 나섰다. 오른쪽 극단의 사람들은 "시대착오적인 마르크시즘이나 공산주의를 퍼뜨리려는 것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이런 '빨간칠 하기'는 설득력이 없어 싱겁다.

가톨릭은 122년 전인 1891년 교황 레오 13세가 '새로운 사태(레룸 노바룸)'라는 제목의 '교황회칙'을 통해 계급적대 등 사회주의 이론을 반박하고 사유재산제를 옹호하면서 노동과 자본 간 조화로운 관계를 설교한 이래 입장을 바꾼 적이 없다. 이번 '교황권고'에도 자본주의 자체나 사유재산제를 거부한 것으로 해석될 만한 말은 한마디도 들어있지 않다.

보다 흥미로운 것은 인기 있는 경제학 교과서 '맨큐의 경제학'의 저자 그레고리 맨큐 하버드대 교수의 반박이다. 맨큐는 블로그를 통해 "역사를 통틀어 자유시장 자본주의는 경제성장의 큰 동력이었고, 경제성장은 보다 도덕적인 사회의 동인이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낙수효과는 이론이 아니라 좌파가 자신들이 반대하는 관점을 경멸적으로 부르는 말이며, 우파가 좌파의 이론을 '부자 짜내기'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대립하는 의견 간의 개방적 토론을 격려하기보다 경멸어를 사용하는 교황을 보게 되어 유감"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간단한 게시물이지만 교황권고에 당황한 그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기에 충분하다. 오죽하면 교회의 비과세 지위를 가지고 비아냥거리기까지 했을까. 그는 "교황은 교회의 비과세 지위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며 "어쩌면 교회가 받는 세금혜택이 낙수될 때 뭔가 좋은 일을 한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2011년 11월 자신의 경제학 개론 강의실에서 일부 학생들이 "편향된 관점만을 가르치는 강의는 듣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퇴장해서 '점령(오큐파이) 시위'에 동참하러 갈 때 그가 보여준 태도와 다소 다르다.

그때도 그는 퇴장한 학생들을 비롯한 점령 시위자들의 주장을 "진지한 분석이나 명료한 정책처방 없이 기존질서에 반대만 하는 상투적 주장들의 잡탕바구니"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너도나도 성적표와 이력서 광내기에 몰두하는 세태 속에서 더 나은 사회를 만들고자 자기만의 협소한 관심사를 넘어 사고하려는 자세"를 칭찬하는 여유는 보였다.

어쨌든 맨큐가 굳이 반박하고 나섬으로써 '낙수효과'가 주류경제학 측에서 듣기에 매우 거북한 말임을 자인한 셈이 됐다. 낙수효과를 다시 정리하면, 대기업이나 부자에게 조세감면 등 경제적 유인이나 혜택을 주어 돈을 더 많이 벌게 해주면 경제 전체도 성장해서 중소기업이나 중저소득계층의 형편도 나아지게 된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요즘 우리나라 경제가 이 가설을 뒷받침할까? 부자감세에 따른 소득증가 효과를 직접 누리는 계층을 빼고는 고개를 갸웃거릴 것 같다.



이주명 논설위원 cmle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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