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 찬 흥남부두에/ 목을 놓아 불러봤다 찾아를 봤다'/ 란 가사의 <굳세어라 금순아>는 그런 이별을 잊지 못한 실향민들의 애환을 담은 노래였다. 그들은 피난민 신세로 도착한 부둣가에서 곳곳으로 분산 수용되는 아픔까지 겪었다.
그녀들의 삶을 위로하기 위해서 국립민속박물관이 전국에서 '금순이'란 이름을 가진 할머니들을 초대해 잔칫상을 마련했다. 한 달 동안 공고를 보고 연락한 40여명 중에서 12명의 금순이에게 초청장이 발송되었다고 한다. 60~70대 후반이 된 동명이성(同名異姓) 여인들의 굳센 모습을 통해서 폐허를 딛고 일어선 한국의 60년을 반추해보자는 취지였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초대받지 못한 '금순이 남편들'의 항의도 있었다니, 어찌 금순이 혼자서만 험한 세파를 헤쳐 왔겠는가. 외조자들의 이유 있는 항변에 일리가 있다.
흥남부두 철수작전의 백미는 적지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엄청난 규모의 민간인들을 적시에 실어 나른 휴머니즘에 있었다. 후퇴도 군사작전의 일부임을 증명한 것이다, 법도 마찬가지다. 어떤 법안도 완벽한 것은 있을 수 없다. 내용이 문제가 아니라 시행과정과 시기선택이 더 큰 문제일 때가 많다. 세종시 수정안은 그 전형적인 케이스로서, 수정한 시기와 강행하려는 의지의 진정성이 의심을 받아서 빚어진 비운의 법안이다.
비록 최선의 정치는 아니더라도 함께 살기 위해서 차선의 정치를 생각해야 할 시기다. 법안의 폐기가 불가피한 선택이었던가는 상당한 세월이 흐른 뒤에 역사가 판단할 일이다. 그래서 민법의 대원칙에 '사정변경의 원칙'이 있다. 사정이 변하면 변절도 용서를 받는데 하물며 원안이 보장된 법안의 폐기쯤이야.
국립민속박물관이 미리 시범을 보였듯 대치중인 정국의 열기도 식힐겸해서 전국의 '세종'이란 이름을 가진 분들을 전부 국회로 초청해 여론을 들어보는 이벤트는 어떨까. 다양한 '세종'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국회가 부드럽게 탈출로를 열어갔으면 좋겠다.
누군가의 입에서부터 '세종시 출구전략'이란 쑥스러운 작전명이 거론된 지도 꽤 되었다. 금순이는 생존을 위해서 굳셀 필요가 있었지만, 세종시 수정안은 무엇을 위해 만신창이가 된 채 본회의장을 기웃거리는지. 상임위에서 퇴출된 그 수정안은 집시법처럼 예산이 필요 없는 법이 아니라 수십조원의 돈이 더 소요되는 공룡법안임을 금순이도 알고 있다. 이제 정부의 체면을 생각할 때가 아니다. 돌아설 땐 말없이. <시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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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우 시사평론가 pdik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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