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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우의 세상엿보기] 어느 장학사의 '하이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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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대우 시사평론가] 하이힐 매장만 보면 불나방처럼 들어가서 이것저것 신어보는 여성들의 모습을 가끔 볼 수 있다. 구입하려고 신어보는 것인지, 그저 어울리나 해서 신어보려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다양한 컬러샌들 앞에선 더욱 약한 모습을 보인다. "방세는 밀려도 하이힐은 절대 포기할 수 없다"는 유혹의 상징인 하이힐. 그래서 여성에게 있어 '신발은 패션의 끝'이라는 말도 생겼을 것이다.

미니스커트에 하이힐은 그 자체만으로도 여름거리의 평균연령을 크게 낮추는 상큼한 조합이다. 여성성과 관능미를 상징하는 하이힐의 진화과정은 치마 길이가 짧아졌던 과정과 대체 비슷하지 않았을까 싶다. 한 뼘 남짓한 스커트에 하이힐 차림의 도발적인 워킹이야말로 언제든지 남성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수 있는 신무기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하이힐 굽의 치명적인 위력이다. 이따금 치한들에 쫓기는 여성들이 위기 모면수단으로 하이힐을 벗어 휘둘렀던 뒷 굽의 파괴력. 들고 뛰다가 돌아서서 머리통을 강타할 수 있는 그 굽의 강도는 직접 맞아보지 못한 자들이 어찌 언급하겠는가.

지난해 12월 실제로 동료와 취중 몸싸움 도중에 하이힐로 폭행하여 세간에 화제로 떠올랐던 어느 여장학사의 무용담을 보자. 그날 저녁 경찰의 단순한 폭행사건 조사과정에서 홧김에 동료에게 승진을 부탁하며 2000만 원을 준 2년 전의 거래를 폭로해버렸던 것이다.

하지만 내부고발로 신고자의 범죄가 드러나도 신고자에 대해서는 형을 감경하거나 면제하고 공공기관의 징계 처분에 대해서도 같은 규정을 준용토록 한 부패방지법 덕분에, 그녀는 조사만 받고 여태 신분상 불이익을 받지 않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내부비리를 고발한 점이 참작되어 장학사 신분을 유지했지만, 취중폭력으로 인해 공무원으로서 품위를 실추시켰다는 이유로 결국 퇴출되고 말았다. 소문만 무성했던 교육청내의 은밀한 돈거래 실상이 그녀의 발설로 인해 일부나마 드러나게 되었으니 직장 내에선 그 소행이 무척 괘씸하게 생각되었을 것이다.

교직매매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은 전 서울시 교육감과 전ㆍ현직 인사담당자들의 비리가 세상에 알려지게 된 배경에도 바로 이 여성장학사의 하이힐 거사가 단초였다. 서울교육청은 그동안 자신들의 비리를 폭로하고도 내부고발자로 승격한 이 장학사의 처리를 두고 얼마나 속을 앓았으랴.

최근에도 지방의 한 교육감 당선자가 자신의 사무실로 돈 봉투를 들고 왔던 교육청 간부들이 여럿 있었다고 폭로할 정도로 교육청의 상납비리는 근무지에 상관없이 오래된 관행이었음이 사실로 확인되고 있다. 극소수겠지만 이제 선생들이 점수를 잘 받기 위해서 거액을 주는 경우가 있었다는 현실을 알게 된 학생들. 그 학생들이 받아든 성적표는 과연 공정하다고 할 수 있을까?

화장실문화가 정착되기 전의 17세기 프랑스에서 밤새 거리에 던진 오물을 밟지 않기 위해 굽 높은 신을 신은 것이 하이힐의 기원이라고 한다. 그런 기능면에서 보면 비리도 일종의 사회적 오물이니, 21세기 한국 땅에서도 하이힐은 여성장학사를 통해서 변형된 방식으로 역할을 수행했던 셈이다.

하이힐은 여성의 눈높이와 자존심을 높여주기도 한다. 그 굽만큼 여성들의 사회,경제적 위상이 높아졌으니, 보호 대상이던 여성들의 존재가 도리어 공격을 당할 위치로 노출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구나 무더운 계절이라 여차하면 하이힐을 벗어들 일이 더 많아질지도 모른다.

'하이힐 폭행'사건을 빌미로 여장학사들의 하이힐 착용금지 조치를 취하지 않은 서울교육청의 이성에서 조금은 희망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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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우 시사평론가 pdik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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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우 시사평론가 pdik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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