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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디지털교과서 못 미더운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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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2015년까지 모든 초ㆍ중ㆍ고 교과의 종이 교과서를 없애고 '디지털 교과서'로 바꾸겠다고 선언했다. 지난달 29일 발표했지만 벌써부터 무거운 책가방이 사라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정부 발표대로라면 학생들은 자신의 수준과 적성, 필요에 맞는 교과목을 온라인 수업으로 들을 수 있게 된다. 물론 각종 평가도 온라인을 통해 받게 된다. 미래 공상과학 영화에서나 봄 직한 모습을 이제 현실에서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정부 발표를 들으며 어딘가 부족하다는 의구심이 들었다. 프랑스의 동화작가 생텍쥐페리가 한 말이 생각나서다. "당신의 아이를 뱃사람으로 만들고 싶은가. 그렇다면 아이에게 '배'를 만들어주지 말고 바다를 미치도록 그리워하게 하라." 그렇다. 학교에서 아이들은 선생님에게 새로운 문명의 이기(利器)를 배우기 앞서 무엇엔가 미치도록 관심을 가지는 방법, 즉 열정을 배우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일제시대를 살다 간 교사 김교신이 그랬다. 수업시간 50분 동안 교과서 내용은 30분 정도로 마무리하고, 나머지 시간은 인생과 민족을 가르쳤다. 지리교사였던 그는 한 지방의 최대 산물은 감자나 시멘트가 아니라 '인물'이라면서 이순신과 정몽주를 이야기했다. 그런데 김교신이 가르친 학생들의 성적은 교과진도에만 전념한 일본인 교사의 제자들보다 성적이 훨씬 좋아 상급 학교에 더욱더 많이 진학했다고 한다.

여기에 교육의 비결이 있다. 가르치지 않고 깨우치게 하는 방식으로 스스로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을 키울 수 있는 것이다. 베를린올림픽의 손기정, 어린이 문학자 윤석중, 농촌 계몽 운동가 류달영…. 이렇게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만한 인물들이 김교신의 뜨거운 가슴에 안겨 컸다. 이상적인 교육은 이처럼 아이들을 잠에서 깨어나게 하는 교육이다.

집사람에게 물어봤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막내아이가 학교에서 무엇을 배우는지 궁금해서다. 커다란 모니터를 틀어놓고 쏟아져 나오는 학습자료를 멀뚱히 쳐다보며 수업시간을 때우는 교사들이 적지 않다는 걱정부터 쏟아냈다. 중ㆍ고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수학문제를 모니터 앞에 앉아 푸는 것도 불만이라고 했다. 손으로 쓰고 말로 토론하며 공부하는 것이 진짜 공부가 아니냐는 것이다. 그 순간 손으로 무릎을 쳤다. 생텍쥐페리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뱃사람으로 크려는 아이들에게 배를 만들어 주기 앞서 바다를 미치도록 그리워하게끔 하는 교육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그것이 선행돼야 아이들이 배를 탈 것 아닌가? 그 같은 열정이 없다면 아이들이 배를 탄들 어떻게 험한 바다를 헤쳐나갈 수 있단 말인가. 이런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며 떠나지 않았다.
미래의 학교가 달라지는 만큼 가정에서도 교육환경의 변화는 불가피할 것이다. 동네시장 자리를 대형 할인마트가 대체하고 동네 다방이 스타벅스에 밀려 사라지는 이 시대에 학교라고 옛날의 모습 그대로 정체돼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학생들이 언제 어디서나 원하는 내용을 배울 수 있도록 2015년까지 모든 학교에 클라우드 컴퓨팅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교육 환경이 만들어진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디지털교과서는 날로 발전할 것이다. 문제는 그것을 사용할 아이들과 선생님이 그것을 필요로 할 만큼 강력한 동기 부여를 어떻게 할 것인가이다. 그 열정을 살리지 못한다면 디지털교과서란 배는 항구에 발이 묶인 채 영영 바다로 나아가지 못할 것이다. 이런 생각은 디지털교과서 정책을 폄하하려는 데서 나온 것이 아니다. 이 정책이 성공하려면 무엇을 함께 고려해야 하는지를 따져보자는 얘기다. 일제시대 김교신이 이 시대에 다시 교사가 된다면 교육행정 담당자들에게 뭐라고 충고할지 궁금하다.




황석연 기자 skyn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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