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은 아이폰을 2007년 6월 출시했다. 당시 우리나라 국민 대부분이 휴대폰을 소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모토로라 등 일부 제조사를 제외하면 외국산 휴대폰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다. 우리나라에서 사용되는 휴대폰에는 반드시 국내 개발 무선 인터넷 플랫폼인 위피(WIPI)가 탑재돼야 했기 때문이다. 해외 업체들이 굳이 한국시장을 위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모두를 수정할 필요가 없었다. 위피 의무 탑재는 2009년 4월 폐지됐고, 그해 말이 돼서야 아이폰이 출시됐다. 우리나라에서 스마트폰 시장과 생태계 형성이 미국 등에 비해 2년 이상 늦은 셈이다.
올해 초 미국 시장조사기관 CB 인사이트(CB Insights)가 이른바 4차 산업혁명 기술들로 평가받는 신약개발ㆍ비즈니스인텔리전스ㆍ게임 등 다양한 분야를 대상으로 인공지능 100대 기업을 발표했다. 이중 한국 기업은 1개에 불과했다. 많은 전문가들은 규제 때문에 한국 기업들이 글로벌 혁신 경쟁에서 뒤쳐졌다고 이야기한다. 지난 11월30일 국무조정실은 관계부처합동으로 신산업 규제혁파와 규제 샌드박스 추진방향을 발표했다. 기존 법령에 한정적ㆍ열거식으로 정의되어 있는 사업요건과 기준들을 포괄적 개념으로 정의하고, 유연한 제품ㆍ서비스 분류체계를 도입하는 입법방식의 전환이 그 내용이다. 또 신제품과 신서비스의 조속한 시장 출시를 위해 시범사업ㆍ임시허가ㆍ규제 탄력적용 등을 규제 샌드박스에 우선 도입해 검토한 뒤 개별 법령 개정을 추진하겠다는 내용도 있다. 이번 발표를 계기로 규제에 막혀 고전하는 스타트업들이 용기를 갖고 연구개발과 비즈니스를 펼칠 바탕이 마련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하지만 이뿐 아니라 정부의 또 다른 역할도 기대하고 싶다. 현재 카풀 서비스 업체 풀러스와 서울시 간 벌어진 갈등은, 과거 우버 불법 논란에 이어 규제와 신산업 간 충돌이라는 초미의 관심사로 대두됐다. 전국택시연합회와 서울개인택시운송사업조합의 저항으로 국회 토론회가 무산된 사건 역시 혁신적 기술과 서비스가 우리 사회를 대립 국면으로 치닫게 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앞으로 카풀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이런 갈등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현행 규제 시스템 내에서 사업을 영위하고 있는 기득권을 보호하면서 동시에 신사업 활성화를 꾀하는 정부의 '스마트한' 중재의 중요성은 두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차두원 한구과학기술기획평가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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