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지에 소개된 모 은행장의 말이다. 이달 26일부터 개인형 IRP 가입대상이 자영업자ㆍ공무원ㆍ군인 등 소득이 있는 모든 취업자로 확대되는 것을 앞두고 금융회사들 사이에 물밑 전쟁이 한창이다. 사전예약제, 수수료 인하 등 새로운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새로 IRP에 가입할 수 있는 사람이 730만명이나 된다니 금융회사 입장에선 군침이 돌지 않을 수 없다.
IRP는 1인 1계좌만 가능하고 가입 후 중도에 해지할 경우 세제상의 불이익을 받기 때문에 일단 가입하면 오래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잘 간파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그가 가입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연금지배구조의 정점에 있었다면 아마도 'IRP의 안정적인 수익률과 가입자서비스가 중요하다'고 말하지 않았을까.
금융회사가 기업지배구조 논리를 더 중요시할 수밖에 없는 것은 퇴직연금 운영관련 업무 일체를 금융회사에 위탁하는 현행 계약형 제도의 어쩔 수 없는 한계다.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퇴직연금제도를 도입할 때 계약형만 허용한 것은 금융회사가 지니고 있는 적립금 운용과 제도에 대한 전문성, 자본력 등 계약형의 한계를 뛰어넘는 장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미끼만 덥썩 물었다가 수익률이 나빠지면 오히려 노후준비에 독(毒)이 될 수 있다. 이런 우를 범하지 않으려면 미끼통인 IRP 운영체제를 잘 살펴야 한다. 특히 적절한 시기에 올바른 방향으로 IRP 적립금의 자산배분을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는 체제가 잘 갖춰져 있는지 눈여겨봐야 한다.
최근까지 높은 수익을 시현한 상품이 향후에도 그럴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오히려 그 반대인 경우가 허다하다. 그럼에도 성과가 좋은 상품에 몰리는 것은 겉모습에 쉽게 매혹당하는 인간의 한계다. IRP처럼 장기간에 걸쳐 운용하는 상품의 경우에는 지금까지의 겉모습보다는 그 운용철학과 시스템인 속모습이 중요하다. 이 속모습이 겉으로 드러난 형태가 운용관련 서비스다.
주기적으로 수익률을 알려주는가, 자산배분을 조정하는 리밸런싱 체제가 잘 갖춰져 있는가, 금융이나 노후준비와 관련한 교육체제가 잘 갖춰져 있는가 등을 따져보면 대략적으로나마 금융회사의 속모습을 간파해 볼 수 있다. 이것이 '잡힌 물고기' 신세가 되지 않는 지름길이다.
손성동 한국연금연구소 대표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