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성한 칡넝쿨을 보고 있으면 문득 태종 이방원의 ‘하여가’가 떠오른다. 고려를 뒤엎고 새로운 나라를 세울 야심에 차 있던 이방원은 고려의 마지막 유력자이자 정적인 정몽주를 초청한 술자리에서 그 유명한 “이런들 어떠리 저런들 어떠하리”하는 시를 지었는데, 알다시피 그 두 번째 연이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이다. 그리고는 은근하지만 노골적으로 “우리도 저같이 얽혀서 백년까지 누리리라” 하고 꼬득인다. 말이야 은근하지만 그 위협과 기세가 만만치가 않다.
결과는? 선죽교에서의 죽음이다. 절개를 지켰던 정몽주는 철퇴에 맞아 죽고, 이방원은 왕이 되어 자기에게 협력했던 인간들이랑 연연세세 ‘이런들 어떠리 저런들 어떠하리’ 노래하며 살았다. 어찌 이방원뿐이랴. 훗날 나라를 팔아먹었던 친일 매국노들도 그렇게 노래하며 살았을 것이다.
그런데 요즘 대한민국을 보면 마치 만수산 드렁칡처럼 어지럽다. 하루가 멀다 않고 쏟아져나오는 사건에, 등장인물까지 일반 서민들은 정신을 차리기가 힘들 정도이다. 처음엔 무슨 화장품 사업으로 큰돈을 벌었다는 사람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어서 그의 변론을 맡았던 무슨 전직 부장판사 출신이라는 변호사가 등장하고, 그 다음에 이어 다른 모종의 관계로 엮인 전현직 검사장이라는 인물들이, 그리고 뒤이어 청와대 무슨 수석인가 하는 인물이 등장한다. 그 판에 어디서부터 얽혔는지 모르게 유력 보수신문사 주필도 등장하고, 그와 관계된 2억원짜리 초호화 유럽 유람 이야기도 나온다. 워낙 거물급들이어서 그런지 그런 인물 한 명씩 등장 할 때마다 나라가 온통 난리법석이다.
그런데다 그들과 함께 등장하는 돈의 액수도 만만치가 않다. 사기, 뇌물, 횡령 등등 부정의 이름으로 수십 억, 수백 억이 예사로 거론된다. 이런 돈과 저런 권력이 난마처럼 얽혀 있어 서민들은 정신이 헷갈릴 지경이다. 청문회에 나왔던 어떤 여성 장관은 일년 지출이 5억을 넘나든다니 도무지 현실감이 없다. 그녀의 남편은 굴지의 로펌 수석 변호사이고, 그녀의 딸은 멀리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기도 전에 달랑 화상 면접 하나로 청년실업으로 난리인 이 나라에서 100대 1의 경쟁을 뚫고 재벌 계열 회사에 취업을 했다고 한다. 정말이지 만수산 드렁칡처럼 얽힌 ‘그들만의 리그’에 당장 자기 앞가림도 힘든 서민들은 자꾸 헛웃음만 나올 뿐이다.
그리고 나서 10년. 지금 대한민국은 어떤 상태인가? ‘국민행복시대’를 열겠다던 대통령의 공약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지금 대한민국 상위 10프로의 소득 집중도는 세계에서 미국 다음으로 높다. 그 아래 대다수 서민 대중들은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가계부채 폭탄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살아가고 있다. 이미 함께 잘 살자는 공동체의 이념은 무너진 지 오래이고 양극화 속에는 온갖 형태의 부정과 부패가 썩은 냄새를 내며 독버섯처럼 자라나고 있는 중이다. 안보, 안보 하지만 이 문제보다 더 시급한 안보 문제가 또 어디 있을까? 사드보다 더 시급한 게 이 만수산 드렁칡처럼 얽힌 부패의 고리인지도 모른다.
김영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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