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서울이 111년 만에 역대 최고 기온을 달성한 순간 우리는 그 속에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기록은 역사가 됩니다. 기록에 담긴 의미가 어떤 시각으로 나타날지는 훗날의 일이지만, 우리가 폭염의 역사가 새로 쓰인 시대를 겪은 것은 분명합니다.
폭염 때문에 거리는 예년보다 확실히 한적했습니다. 사람들이 더위를 피해 자동차, 주택, 상가, 회사, 지하에 머물렀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풍경을 보니 레이철 카슨이 쓴 책 '침묵의 봄'이 떠올랐습니다. 살충제와 제초제로 인해 봄이 와도 새들의 노랫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내용입니다. 제목부터 생태계 파괴의 상징이 그대로 느껴지는 이 책은 인간이 만든 인공물로 인해 균열이 간 자연을 고발하며 큰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올여름은 침묵의 봄 대신 침묵의 여름이 떠오릅니다. 도로에 버스도 다니고, 자가용도 다니고, 에어컨 작동 소리는 들리지만 사람의 모습은 보기 힘듭니다. 여름이 오면 운동장에서 땀을 흘리며 운동하던 아이들의 명랑한 소리도 들리지 않습니다. 우리가 만든 기계와 인공물은 거리 곳곳에 존재하지만 우리의 모습을 서로 직면할 수는 없습니다. 오직 침묵이 그 자릴 대신할 뿐입니다.
이러한 여름이 오면, 가을과 겨울에도 변화가 생길 수 있습니다. 시소가 한쪽으로 기울면 평형을 맞추기 위해서라도 반대편이 다시 한 번 기울어져야 합니다. 폭염이 앞으로의 가을과 겨울에 큰 변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 시점이 정확히 예측되진 않더라도 한파, 폭설, 폭풍, 태풍이 이례적인 기록과 함께 크게 교체될 가능성이 큽니다. 우리가 비교적 안심해온 가뭄이나 습도, 해수면 높이 등도 또 다른 경이적인 기록을 세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를 다른 모습, 다른 형태로 침묵하게 만들지도 모릅니다.
흔들리는 여름을 지나 침묵의 여름과 마주했습니다. 맹위를 떨치는 폭염으로 인해 하루가 멀다 하고 최고 기온을 경신하는 시대에서, 기상청은 기상전문 국가기관으로서의 자리를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됩니다. 매해 체감할 정도로 빠르게 변하는 날씨의 엄중한 경고가 두려울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두려움을 희망으로 치환하는 기관이 될 수 있도록 차갑고 예리한 분석과 폭넓은 통찰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유난히 크게 흔들렸던 올여름, 침묵의 여름이 이렇게 8월의 끝을 향해 흘러갑니다.
남재철 기상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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