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동선 박사도 <뇌 속에 또 다른 뇌가 있다>에서 비슷한 근거를 제시했다. 인간은 전체 뇌에서 생각에 할애할 수 있는 대뇌화 지수(EQ)가 단연 최고다. 고양이를 기준으로 원숭이는 2배, 돌고래는 5배, 인간은 7.5배 높다. 장 박사는 "사회적 집단이 EQ에 유리하게 작용한다"고 말했다. 결론은 이렇다. 맹수보다 늦게 걷기 시작하고, 빠르게 뛰지도 못하고, 이빨도 사납지 않은 '을'(乙)의 인류가 약육강식의 자연에서 '갑'(甲)의 정복자가 된 것은 무리를 이루는 사회성 때문이라는 것.
갑질의 이면도 있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A기업 얘기다. 1차 협력사(B)가 A로부터 돈을 받고는 일부러 부도를 내는 바람에 2차 협력사(C)가 피해를 입었다. C는 A를 찾아와 연일 시위를 벌였다. 난처해진 A는 결국 B를 대신해 물품대금을 지불했다. 작은 기업이 더 작은 기업에 갑질을 하는 바람에 조금 큰 기업이 피해를 입은 꼴이다. 이 순간 '갑'은 A일까, B일까. '을'은 C일까, A일까.
갑을 관계는 실은 복잡다단하다. 중소기업은 대기업이 갑이라고 하고, 대기업은 공무원이 갑이라고 하고, 공무원은 국회가 갑이라고 하고, 국회는 국민이 갑이라고 한다. 하지만 국민에게는 여전히 정치인이 갑이고, 직장인에게는 인사권자가 갑이고, 파견 직원에게는 정규직 노조가 갑이고, 아르바이트생에게는 식당 주인이 갑이다. 누군가의 갑은 누군가의 을인 '갑과 을의 뫼비우스 띠'.
이정일 산업부장 jay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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