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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리스트가 문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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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 대한변호사 협회장./윤동주 기자 doso7@

김현 대한변호사 협회장./윤동주 기자 doso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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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정부시절 작성된 리스트들이 연일 보도되고 있다. 문화예술계, 방송계 등 여러 분야에서 블랙리스트가 존재해 부당한 차별이 이뤄졌고, 반대로 부당한 지원이 이뤄졌던 화이트리스트도 나왔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전 문화부 장관이 또다시 화이트리스트 사건으로 출국금지를 당하기도 했다. 리스트 정국을 보면서 정치의 본질적 속성과 앞으로의 개혁 방향에 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정치의 속성은 우리 편과 상대편을 구분하는 것이다. 이는 정치가 시작된 이후 지금까지 변하지 않은 본질적 속성일 것이다.

태종 이방원은 정몽주에게 하여가를 들려주고 우리 편으로 포섭하려 했으나, 단심가를 듣고 상대편으로 구분해 제거했다. 상대편으로 구분된 사람들의 명단이 바로 살생부이자 블랙리스트이다. 수양대군이 계유정난 과정에서 책사인 한명회가 작성한 살생부에 기재된 대신들을 제거한 것도 블랙리스트의 역사적 예로 볼 수 있다. 계유정난 이후 참여자들을 공신에 책봉한 것은 화이트리스트의 예라 하겠다.
중요한 역사의 교훈은 우리 편과 상대편을 편협하게 구분하는 정치, 상대편을 가혹하게 탄압하는 정치는 대부분 실패했다는 것이다. 우리 편과 상대편을 구분하는 본질적 속성 자체에서 자유로울 수 없더라도, 상대편을 끊임없이 포용하고 대화하며 타협하는 정치가 필요한 것이다. 상대편에 대한 냉혹한 처단은 결국 강한 반격을 야기하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연산군, 광해군이 그 예이다. 특히, 광해군은 자신의 편인 북인세력만 옹호하고 서인세력 대다수를 상대편으로 구분한 후 수없이 많은 옥사를 일으키다가 결국 인조반정으로 폐위됐다. 끝없는 옥사에 지친 결과 인조반정 당일 밀고가 있었음에도 무시하고 지나쳐버리고 만 것이다. 반면 역사적으로 칭송받는 임금들은 거의 예외 없이 상대편을 너그럽게 포용하는 정치를 했다. 세종대왕 이외에도 탕평책을 펼친 영조나 정조가 그러했다.

공자는 <논어> 자로편에서 "군자는 어울리되 패거리를 짓지 않고, 소인은 패거리를 짓되 어울리지 않는다"고 하여 우리 편만 챙기지 말고 화합하라고 일갈했다. 나아가 술이편에서는 "군자는 평정하고 넓으며 너그럽고, 소인은 항상 겁내고 두려워한다"고 지적했다. 투명하게 당당하게 바른 길로 걸어간다면 상대편을 겁내고 두려워할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이전 정부가 각종 리스트를 만들어 부당한 차별이나 지원을 했다면 이는 그 자체로 정치적 편협함과 무능력을 드러내는 것이다. 리스트 작성이 정권의 운영에 편리했을지 몰라도 민주주의의 근본인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국가공동체를 분열시키며 나아가 정권을 실패로 이끄는 치명적인 리스크가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블랙리스트 작성이 전 대통령을 물러나게 한 것을 현 정부도 똑똑히 보았을 것이다.

각종 리스트에 관해 철저한 수사가 이뤄져 다시는 이러한 일이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 부당한 세무조사나 차별 등이 이루어질 경우 신고를 받아 조사하는 기관을 설립하는 것 같은 제도마련도 필요하다. 아울러, 이번 리스트 문제가 지나치게 정치적으로 악용되어 정치보복 논란이 발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단순한 동향 파악인지 악의적인 리스트인지 구분할 필요가 있고, 구체적으로 어떤 불이익이 있었으며 그러한 불이익이 어떻게 가능했는지를 정확히 밝히는 것이 우선이다. 사법부의 판단을 통해 엄중히 책임을 묻되 이를 넘어서는 정치적인 보복이나 불이익이 이뤄져서는 안된다.

아울러, 이전 정부에서 중책을 맡았던 사람들을 모두 화이트리스트 출신으로 단정하고 배척하는 것도 또 다른 블랙리스트의 모습일 수 있다. 특정인을 아무런 근거 없이 이전 정부의 화이트리스트였다고 보도하는 것도 심각한 명예훼손에 해당한다. 리스트 문제를 상대방에 대한 부당한 공격의 수단으로 활용해서는 안 된다. 리스트를 작성해 상대편을 부당하게 탄압했던 이전 정부의 잘못을 현 정부가 되풀이 하지 않고 자신과 생각을 달리 하는 상대편과 대화하고 타협하며 올바르고 슬기롭게 개혁 과제를 수행하길 바란다.

김현 대한변호사 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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