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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석의 몸으로 쓰는 이야기]나는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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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석 문화스포츠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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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는 날은 대부분 걷기에 바친다. 물 한 통과 필름카메라를 넣은 가방을 메고 집에서 가까운 인왕산이나 북악산의 자락길을 걷는다. 가끔은 봉우리에도 올라간다. 천천히 사진도 찍는다. 스마트폰에 걸음수를 헤아리는 앱이 있다. 걷는 날에는 2만보를 넘나든다.

 인간은 걷는 동물이다. 호미니드 시절부터 아프리카 올두바이의 협곡을 걸었을 것이다. 예수도 그의 제자들도 걸었다. 제자들은 예수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걸었다. 독일 로텐부르크의 성야고보교회 앞에는 지팡이를 짚은 사도의 조각이 서 있다. 그가 잠든 스페인 산티아고의 성당으로 가는 길이 순례자의 길이 된 것은 섭리이리라. 아무튼 인간은 걷는다. 베토벤도 괴테도 엄청나게 걸었다.
 베르나르 올리비에도 걸었다. 그는 '파리 마치', '르피가로' 등 이름난 신문에서 기자로 일했다. 그 세월이 30년을 훌쩍 넘었고, 나이는 환갑을 지났다. 일을 그만 해야 했다. 아내가 죽었으며 자식들은 모두 출가했고 마침내 그는 고독해졌다. 삶은 위태로웠다. 그때 걷기 시작했다. 1997년, 올리비에는 배낭을 둘러메고 산티아고 데 콤포스델라를 향해 출발했다. 2325㎞나 되는 길이었다. 이 여행이 그를 행복하게 했다.

 그는 더 오래, 더 멀리 걷고 싶어졌다. 이스탄불에서 시안(西安)에 이르는 실크로드. 1년에 3개월씩, 네 번에 걸쳐 1만2000㎞를 걸었다. 그리고 매일 공책에 기록을 한 다음 파리로 가져가 정리했다. 그렇게 해서 나온 책이 '나는 걷는다'이다. 2003년 12월에 1권이 번역돼 나왔다. 올리비에는 '온몸과 생각으로 세상을 흡수하며 전진하는 기쁨'을 누렸다고 한다. 인간의 걸음은 자유를 뜻하며 그 자체로서 철학하는 행위다.

 다닐로 자넹은 그의 책 '나는 걷는다, 고로 존재한다'에 이렇게 썼다. "의식적 걷기는 나 자신과 세상을 탐험하는 행위다. 따라서 의식적 걷기를 하려면 자기 자신에게 열려 있어야 한다. 힘을 빼고 모든 가능성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의 두 발, 호흡, 신체의 움직임은 물론이고 외부의 소리, 공간, 주변에 주의를 기울일 때 비로소 나 자신과 세계를 온전히 체험하게 된다."
 달리든 걷든, 이 모든 일은 다리가 한다. 물론 우리는 몸의 한곳만 외톨이 운동을 해서는 움직일 수 없다는 사실을 안다. 오래 걸으면 왜 허리며 등이며 어깨가 아프겠는가. 하지만 모든 인생은 드라마이며 주연과 조연이 엄연하니 걷고 달리기의 주연은 두 다리가 틀림없다. 다리를 주제어로 쓴 멋진 책이 있다. 배근아와 신광철이 2015년에 낸 '두 다리는 두 명의 의사다'. 기가 막힌 문장(번역투로 범벅이 되어 있지만)이 쉴 새 없이 등장한다. 특히 이 부분.

 "체중이란 무게를 두 다리가 짊어진 것에서 두 손의 자유가 시작되었다. 인간이 가진 두 손의 자유가 인간을 위대하게 만든 자유의 출발이지만 두 손의 자유는 두 다리가 온몸의 하중을 짊어짐으로써 가능했다. 자유의 헌납 없이 진정한 자유는 존재할 수 없다. 두 손을 위하여 자유를 헌납한 두 다리는 진정 위대하다."

 주말이다. 당신도 걷지 않겠는가. 날씨가 쌀쌀해졌지만 걸으면 곧 몸이 달아오르고 땀이 날 것이다. huhb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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