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몰래 대책을 논의하던 삼풍백화점 경영진은 긴급하게 회의를 중단했다. 그들이 황급히 건물 밖으로 나갔을 때 백화점 안에서는 1000명이 넘는 고객과 종업원이 '평소처럼' 쇼핑을 즐겼고 손님을 응대했다.
1989년 건축 당시 단일 매장으로 전국 2위 규모를 자랑한 대형 건물이 불과 6년 만에 무너진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삼풍백화점은 수년에 걸쳐 자신의 운명을 예고했다. 부실시공과 잦은 설계 변경, 과도한 하중 적재로 벽과 바닥에 금이 갔다. 사고 발생 9일 전에는 지하 식당이 좌우로 흔들렸고, 하루 전에는 5층 식당에서 폭 1m, 깊이 20㎝의 함몰 흔적이 발견됐다.
삼풍백화점 사고는 한국 사회의 부끄러운 단면을 드러낸 인재(人災)였다. 10일 철거의 운명을 맞은 서울 동작구 상도동의 '기울어진 유치원'도 마찬가지다.
지난 6일 밤, 인근 다세대 주택 공사장의 흙막이가 붕괴하면서 유치원 건물이 10도가량 기울었다. 불과 4시간 전까지 만 3~5세 유아 122명이 생활한 곳이었다. 사건이 밤에 발생하면서 '화(禍)'를 면했지만, 다행이라는 말로 정리할 수 없는 이유가 있다.
유치원 관계자와 인근 주민들은 5개월 전부터 지반 침하 사고 위험을 경고했지만 관계 당국은 이번에도 안일하게 처리했다. 사고가 터진 이후 책임 회피에 급급한 모습도 23년 전 서초동 '그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이런 일이 어디 여기뿐일까.
안전 불감증이라는 '끔찍한 전염병'은 아직도 우리 사회를 맴돌고 있다.
류정민 건설부동산부 기자 jmryu@asiae.co.kr
꼭 봐야할 주요뉴스
"하이브 연봉 1위는 민희진…노예 계약 없다" 정면... 마스크영역<ⓒ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