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질문은 어디 먼 나라의 이야기만은 아닙니다. 일상이 전쟁터인 양 조마조마하게 사는 이들이 우리 곁에도 많기 때문입니다. "나는 폭력을 사랑합니다." 중학교 입학 첫 날, 긴 몽둥이를 든 선생님에게 들은 말을 대학생이 된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며 몸서리치는 학생이 있습니다. 교회에서 봉사 활동을 하다 늦었다는 이유로 아버지에게 폭언과 폭행을 당하고 온 몸과 마음에 멍이 든 학생도 있습니다. 말리는 엄마까지 맞습니다. 성폭행을 당했는데 가해자는 버젓이 학교ㆍ직장을 다니고 피해자만 숨어야 하는 날들이 여기저기서 이어집니다.
타인을 동등한 인격체로 인식하는 법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 사회에서 인간관계는 나이ㆍ성별ㆍ직위에 따라 서열화 됩니다. 또래들 사이에서도 부모의 지위에 따라 관계가 고착됩니다. 그런 관계에서 발생하는 폭력에 길들여진 우리는 피해를 피해로, 고통을 고통으로 인지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언어폭력ㆍ학교폭력ㆍ데이트폭력ㆍ가정폭력 등 다양한 종류의 폭력에 둔감해진 사회에서 우리는 피해자가 안 되는 법만 겨우 배웁니다. 눈치껏 말 잘 듣고 순하게 맡은 역할만 해내는 것. 피해자는 내 탓이라는 자괴감 속에 소외됩니다. 억압이 속으로 파고들어 내상이 깊어지고 드러내지 못한 상처는 먼 시간 뒤 다른 방식의 억압과 병으로 나타납니다.
폭력은 여성ㆍ남성의 문제를 넘어섭니다. 여자애들뿐만 아니라 실은 그 누구도 맞아선 안 됩니다. 폭력에 동반되는 사랑의 말들은 폭력을 정당화하는 수단일 뿐, 제대로 된 사랑법이 아닙니다. 힘센 이가 약한 이를 억압하는 원시적인 다스림의 방식에 길들여진 아이는 주체적인 성인으로 자라기 힘듭니다. 그래서 우리는 저항하는 법도 함께 배우고 가르치고 손을 내밀고 보듬어야 합니다. 자녀는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고 학생은 선생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닙니다.
정은귀 한국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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