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를 들어 삼성전자는 MS의 윈도 등 운영체제를 사용해 노트북을 만들면서 MS에 약정된 특허 사용료를 지급한다. 이때 삼성전자는 세법에 따라 특허 사용료의 15%를 원천징수해 국가에 납부한다. '한국 기업의 미국 특허 사용에 대한 대가는 한국에서 과세될 수 있다'고 규정한 한미 조세조약 제6조에 따른 것으로 1979년 이후 과세해왔다.
한국 기업이 한국에서 미국 특허를 사용해 제품을 생산했는데도 그 특허가 한국에 등록돼 있지 않다면 사용지는 한국이 아니라는 얘기다.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음에도 '사용지가 한국을 전제로 한 과세'는 무효라는 판결이 뒤따랐다.
이후 정부와 국회는 2008년 '국내에서 제조ㆍ판매 등에 사용된 특허는 국내 등록 여부와 상관없이 국내에서 사용된 것으로 본다'고 세법을 개정했다(법인세법 제93조 제8호 단서조항). 그러나 이후에도 대법원 판결은 변하지 않고 있다. 문제의 특허권 속지주의를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법원의 속내는 법인세법 개정이 아닌 한미 조세조약을 개정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민주주의 정치체제의 기본인 삼권분립 원칙에 위배된다. 조세조약의 개정은 입법부가 동의하고 행정부가 비준하는 것이다. 사법부는 입법부가 마련한 법률을 해석하는 것이다. 판례를 통해 입법권을 행사하려는 행태(판례 입법)는 자제되어야 한다.
국제법상 조세조약의 해석 원칙은 조세조약대로 하되, 규정이 없다면 국내 세법 규정을 따르라는 것이다. 따라서 한미 조세조약에 사용지에 대한 명문 규정이 없다면 당연히 개정된 국내 세법을 따라 대법원이 해석하면 될 일이다.
국제 조세 분야의 전문가들도 대부분 미국 특허 사용료에 대한 과세는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사실 이 문제는 양심적 병역 거부 등 논란이 많은 가치판단 사항이 아니다. 어느 법을 적용하느냐 하는 단순한 '법원성(法源性, source of law)'의 문제다. 우리 세법조문이 분명히 존재함에도 대법원은 왜 굳이 국제 관습이나 미국 법만을 따르려 하는가.
대법원으로선 이 문제를 대법관 4인으로 구성된 소부(小部)에서만 판단할 것이 아니라 전원 합의체에 회부하여 전체 대법관 이름으로 판단할 필요가 있다(법원조직법 제7조). 모름지기 대법관은 일반 법관과 달리 사건 기록을 보고 판결문을 쓰는 일 외에 국익과 공익을 고려하는 시각을 지녀야 한다.
만약 대법원 전원 합의체에서도 과세 관청이 패소한다면 국세청은 과세 처분을 중단해야 한다. 변호사만 배불리는 일을 계속해선 안 된다. 적폐다. 우리 대법원의 대승적인 판단과 결정을 고대한다.
안창남 강남대학교 경제세무학과 교수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