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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남곡의 인문의 창] 촛불이여!

최종수정 2016.12.29 10:08 기사입력 2016.12.29 09:59

이남곡 인문운동가


세모(歲暮)다.
올해는 촛불의 강물 위에서 지나온 삶과 역사를 돌아본다.
내 안에 흔들리지 않는 촛불 하나 켜고 싶다.
청춘의 설렘이야 옛 이야기지만, 내 안에는 기도(祈禱)가 흐른다.
같은 시대에 함께 살고 있는 이 기적 같은 만남들이 미움과 분노를 넘어 저 깊은 곳에서 따뜻하게 하나 되기를….
그리고 언젠가 불현듯 다가올 헤어짐 앞에 부끄러움과 여한(餘恨)이 없게 되기를….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나는 젊어서 이 말이 몹시 거슬렸다.
부당한 사회구조나 제도를 변혁하려는 의지를 약화시키는 관념론적 궤변으로 들렸기 때문이다.
나는 불가(佛家)에서 말하는 일체유심조의 여러 해석은 잘 모른다.
다만 요즘은 그 심(心)이 욕구(慾求)라는 뜻으로 나에게 다가온다.
실제로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대다수의 가장 간절한 보편적 욕구가 사회를 변화시키고 제도나 구조를 바꾼다.
해방 후 우리 국민들의 가장 간절한 욕구는 ‘절대빈곤으로부터의 벗어남’이었다.
그리고 일단 성공했다.
그것이 해방 후 역사에서 가장 큰 사건이었다.

그리고 욕구의 질이 더 나아가지 못했다.
결국 천민자본주의에 머물렀다. 가진 자는 탐욕으로 못 가진 자는 갈망으로, 종교도 물신(物神) 앞에 무릎을 꿇었다.

천민자본주의에서 사회적 시장경제로 나아가야 했다. 지금은 너무 뒤틀려 어디서부터 손을 써야 할지 모를 정도로 어려워졌다.
다시 ‘가난’의 질곡으로 돌아갈지 모른다. 일단 풍요를 맛본 다음이라 더 어려울지 모른다.
시간이 많지 않다.
국운(國運)이라고 하는 것은 사실 국민의 집단적 욕구가 그 시대의 요구와 부합하느냐에 달려 있다. 집단적인 욕구의 변혁이 가장 어렵다.
좋은 정치, 좋은 제도, 좋은 문화와 이 욕구는 서로 피드백한다.

특권이 인정되거나 세습되지 않고 임금이나 연금이 극심한 불평등에서 벗어나도록 제도나 구조를 개혁해야 한다.
그러나 자칫하면 섣부른 개혁이 남미나 유럽의 실패국가의 뒤를 따를 수 있다.
나는 실제와 유리된 관념론이 아니라 과학적인 사고로서, 욕구의 질을 제고시키는 노력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절박하게 하고 있다.
먼저 종교들이 ‘르네상스’운동을 해야 한다. 석가, 예수, 공자의 본래의 깨달음이나 삶을 21세기에 살리는 것이다.
욕구의 심층을 변혁하는 것이다.
전도(顚倒)된 가치관을 바로 세우는 운동이다.

이것이 뒷받침되지 않는 한, 국운(國運)의 쇠퇴는 막을 수 없을 것 같다.


금강경에 나오는 말이다.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약간 내 나름으로 의역하면,
“무릇 모든 현상은 모두 고정된 실상이라고 할 것이 없다. 만일 이것을 안다면 진리를 보는 것이다.”
존재 자체가 찰나생(刹那生) 찰나멸(刹那滅)하는 변화의 과정일 뿐이다.
사물의 존재에 대한 통찰이다. 허무(虛無)나 염세(厭世)에 빠지라는 말이 아니다. 돈·권력·명예 등에 대한 집착의 허망함을 말하는 것이다. ‘지금 여기’에 가장 진실한 삶을 살라는 말이다.

그리고 동시에 다음에 나오는 논어의 구절과 통하는 의미로 볼 수도 있다.
<공자 말하기를, “내가 아는 것이 있겠는가? 아는 것이 없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나에게 물어오더라도, 텅 비어 있는 데서 출발하여 그 양 끝을 들추어내어 끝까지 밝혀 가겠다.”>

내 나름으로 의역해본다.
“인간은 자신의 감각과 판단으로 사실에 접근할 뿐 사실 그 자체는 알 수 없다.(無知)
그러나 불가지론에 빠지지 않고, 무지의 자각을 출발점(空空)으로 하여, 끝까지 탐구(竭)해 보겠다.”
철저한 무고정(無固定) 무아집(無我執)의 탐구 태도다.
공자는 인식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그가 금강경에서 말하는 내용을 깨닫지 못했을 것이라는 증거는 없다.
그는 제자들이 네 가지를 끊은 사람으로 보았는데, 이 네 가지는 어떤 현상도 고정적으로 보지 않았고(毋固), 자기 생각이 틀림없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며(毋意), 사적인 욕구에 끄달리지 않았으며(毋必), ‘나’라는 고정된 자의식이 없었다(毋我).
나는 이 두 거인의 세계가 과학이 발달한 21세기에 한국에서 르네상스 운동으로 전개되는 큰 꿈을 꾸어본다.

위의 해석은 물론 내 감각과 판단이 섞인 것이다.
그러나 위에 말한 정도는 중학교 정도에서 배우는 과학 지식이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화석화된 지식일 뿐, 실생활과 관계없는 실천하기 어려운 이상으로 치부해버린다. 그것을 실생활에서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것을 나는 '르네상스'라고 부르고 싶다.
'르네상스'는 종교혁명이며 의식혁명이며 생활 혁명이다. 동시에 사회변혁의 원동력이다.

우리가 만들어낸 기적 같은 촛불의 강물이 모두의 가슴 가슴에 꺼지지 않는 불씨로 되어 우리 시대의 르네상스로 이어지기를 간절히 기도하는 심정이다.

이남곡 인문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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