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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 굽는 타자기] 신노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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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화로 인해 우리는 자신들에게 유일하게 남겨진 일도 하지 못하는 노동자들로 가득한 사회가 도래할 가능성에 직면하게 됐다."(한나 아렌트)

과학기술의 발전에는 언제나 비관론이 꼬리표처럼 따라붙는다. 진화한 기술이 인간의 노동을 대체할 것이라는 우려부터 종국적으로는 인간이 기계에 대한 통제력을 잃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마저 존재한다. 최근에는 인공지능(AI)이라는 한계를 알 수 없는 미지의 것에 대한 공포가 비관론을 가중시키고 있다.
물론 반대 의견이 없지는 않다. '자동화 시대의 도래로 인간은 여유로워지고 더 중요한 일에 매진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낙관론도 분명 존재한다. 이러한 주장은 기술발전에 따른 혜택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경험적 근거가 명확하다. 다만 문구 하나하나가 회자되는 비관론에 비해 좀처럼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할 뿐이다.

그런데 과학기술의 진짜 미래가 과연 낙관론이나 비관론이라는 극단에 존재할까. 역사적으로 어떤 기술의 발전도 오롯이 장점 혹은 단점만 갖는 경우는 없었다. 최성환 경희대학교 의과대학 교수가 쓴 '신노예'는 낙관론과 비관론 사이 어디쯤에 미래를 설정한다. 책은 기술이 풍요와 편리함을 가져올 것이란 점을 부정하지 않는다. 낙관론이다. 그럼에도 책이 비관론에 가깝다고 볼 수 있는 이유는 우리가 그 편리함에 홀려 신노예 계층이 되고 있다는 일침이 담긴 탓이다.

"신종노예인 둘로스 네오스는 옛날 노예처럼 일할 필요가 없다. 자칫, 이 신종노예가 오히려 주인보다 더 상전인 듯 보일지도 모른다. … 하지만 허점은 여기에 있다. 우리가 일해서 먹이고 입히고 재우고 즐겁게 해줄 테니, 너희는 영혼을 우리에게 내놓으라는 것이다. 신노예의 개념이 이것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 노예는 물리적으로 예속돼있지 않고 억압을 당하지도 않는다. 과도한 노동으로 고통받던 과거 노예와 달리, 오늘날의 노예는 오히려 노동을 빼앗겼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저자는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라는 수세기 전부터 사용되던 표현의 의미를 짚으며 질문을 던진다.

"이제 할 일이 없어질 비자본가계급들은 말 그대로 먹지도 말아야 할 것이 아닌가? 내가 배운 것을 컴퓨터가 더 잘 할 수 있다면, 나는 컴퓨터에 비해 열등한 존재이므로, 노예보다도 값어치가 없다. 그냥 쓸모없이 귀중한 식량자원과 맑은 공기를 소모하고 깨끗한 물을 오염시키는 가치 없는 고깃덩어리일 뿐이다." 그렇게 기술의 발달은 인간에게서 노동을 앗아가 '잉여인간'을 탄생시킨다.

그렇다면 4차 산업혁명 시대 잉여인간은 어떻게 노예가 될까. 현대사회는 아무리 생산력을 상실한 인구라도 기근이나 전쟁으로 제한하거나 인종말살정책 같은 것으로 마구 줄일 수 없다. 대신 소수의 기득권층은 이들은 소비체로 활용한다. 가혹한 현실에서 도망칠 수 있는 가상의 유토피아로 꾀어내 자신들이 생산한 재화를 끊임없이 구매하도록 한다. 스스로 인지하지도 못하는 사이 새 시대, 새 규칙에 순응하도록 만드는 셈이다.

가상현실(VR) 체험에 열광하고 스마트폰에 열중한 채 홀린 듯 새로운 애플리케이션을 다운로드받는 것이 그들이 원하는 잉여인간의 모습이다. 가상세계를 만들어 돈을 번 이들은 절대 가상세계에 탐닉하지 않는다는 점이 이러한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저자가 이 책을 쓴 목적은 이미 충분히 비관적으로 그려지고 있는 미래를 재차 암울하게 만들기 위함이 아니다. 우리 스스로 신노예 계층으로 전락하고 있음을 자각하고 그 위기상황을 벗어나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책은 독자들을 향해 이렇게 말한다. "앞서지 못한 자는 앞선 자의 노예가 되고, 혁명은 앞선 자와 뒤선 자를 갈라놓는다. 누가 미래의 노예계층이 될 것인가?"

김지희 수습기자 ways@


신노예
최성환 지음
앤길
1만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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