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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문환의 지리산별곡④]숲속에서 풍금을 쳐요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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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촌~위태마을)

[조문환의 지리산별곡④]숲속에서 풍금을 쳐요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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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봄은 오는 것이 아니라 맞이하는 것이다.
보는 것이 아니라 듣는 것이다.

시각적으로 나타나는 봄은 단지 하나의 형상일 뿐이다.
진짜 봄은 보이기 이전에, 아니 그 훨씬 이전에 시작되었고 존재했었다.
땅속 깊은 곳에서, 계곡 음지에서,
그리고 잠자는 듯 한 나의 마음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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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향한 요동치는 몸부림이 있었기에 봄으로 나타나 보이는 것이다.
그럼으로 단지 눈에 보이는 것만 가지고 봄이 왔다 할 것은 아니다.
봄을 잉태 해 내기 위한 동토의 땅속 깊은 곳에서 봄은 이미 존재했었다.
그래서 진짜 봄은 춘삼월이 아니라 차라리 동지섣달이라고 말하고 싶다.
오늘날 우리가 봄처럼 맞이하여 즐기는 초현실적인 문명도,
고도 영양에, 고도 비만의 사회가 된 것도,
동토와 같은 땅속에서 문명의 꽃을 피워내기 위한
요동치는 몸부림의 결과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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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으로 꽃에 대한 찬사도 좋지만,
그 꽃을 피워내기 위해 분투한 세월에 더 박수를 보내야 할 것이다.


또한 우리의 부모님들도 후손의 꽃을 피워내기 위해
자신들의 몸을 불태웠으니 경의와 존경을 보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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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햇살에 숲길로 들어서는 입구의 대나무 숲이 빛났다.
그 빛으로 발걸음이 가볍다.

하동호건너 칠성봉이 부채를 펼쳐 놓은 듯하다.
이로 인하여 북으로부터 불어오는 찬바람이 멈춰 섰고
사선으로 내리쬐는 햇빛에 계곡은 음양으로 양분되었다.

그 모습이 마치 시골영화관에서 영화필름이 돌아가면서 만들어 놓은
흑백 톤의 음영을 보는 듯하다.
그 빛에 자작나무, 그의 하얀 살결에 눈이 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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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절 푸르른 소나무는 어디서 그 에너지가 나오는지 늘 궁금하다.
때로는 계절의 변화에 따라 옷을 입고 벗고 하는 일상도 좋아 보이는데
소나무는 그런 모습을 감추는 듯 하여 애처롭기도 하다.

바늘을 찔러도 피한방울 나지 않을 것 같던 도토리나무도
이젠 물이 오를 것 같다.
그래야 올 가을에 토끼며 다람쥐며 숲속의 식구들이 배부르게 될 것이다.

오솔길 옆에 거의 죽은 듯 서 있는 돌배나무 뿌리 언저리에
이끼가 푸름을 자랑하고 솜털 같은 더듬이로 햇살을 향해 숨을 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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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양이터재로 오르는 숲길은 하나의 살아 있는 자연박물관과도 같다.
계곡의 왼쪽으로는 재가 끝나는 지점까지 계속하여 물이 흘렀다.
그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는 어디 이만한 오케스트라가 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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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는 이곳에도 사람이 살았음이 분명하다.
군데군데 사람의 손으로 쌓아 놓았을 돌무더기와 돌 축대,
그 위에 위태롭지만 늠름하게 서 있는 나이 먹은 감나무,
그리고 어김없이 그 주변을 지키고 있는 작은 대나무 숲,
아직도 사람의 온기가 남아 있는 듯하다.

감나무와 대나무가 산에 있다면 십중팔구는 사람이 살았던 곳이다.
그래서인지 양이터재로 넘어가는 고갯길은 더 정감이 있다.

아름드리 편백나무 숲에서는 향기가 진동한다.
그 곧은 나무를 안고 귀를 그의 몸에 대어보면
졸졸졸 물이 올라가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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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대나무 숲에서는 정자세로 앉아 명상도 해보고,
대나무 이파리가 스치는 소리를 따라 나도 같이 날아가는 상상도 해본다.

소나무 숲과 대나무 숲의 바람소리는 분명 다르다.
대나무 바람소리는 꼭 사람 발자국 소리 같다.
내 어릴 적 혼자 집을 지킬 때 대나무 숲에서 나는 소리로
누군가 집으로 들어오는 듯 하여 두려움에 자주 문을 열어 봤었다.

소나무 가지에서 나는 소리는 휘파람 소리 같기도 하고
청아하게 들리는 그 소리는 옛날 선비들의 글 읽는 소리를 닮았기도 하다.

상수리나무에 난 옹이에서는 세월의 냄새가 풍겨난다.
상처를 곱게 치유한 인고의 세월이 차라리 아름다움으로 승화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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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씩 빽빽한 숲 사이로 파고들어오는 햇빛에
숲속의 오솔길은 초등학교 교실 한쪽에 자리 잡은 낡은 풍금건반이 되었다.
저 풍금에 맞춰서 “산 위에서 부는 바람 시원한 바람” 노래를 불렀었지…….


재를 넘어가는 먼당의 빈 새집에 새가 돌아오면
계절은 또 바람을 타고 여름으로 달릴 것이다.

양이터재 넘어 궁항과 오율을 지나 지내재를 넘으니
저 멀리 위태마을이 오후햇빛에 나른한 하품을 하고 누웠다.

꿈결 같았던 양이터재 숲길,
올 가을 아기 손 같은 단풍잎이 물들 때 내 다시 오리라!
그리고 숲속 풍금에 맞춰 노래 부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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