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말부터 1960년대까지 경제학 분야의 최고 권위자로 명성을 날린 그는 수리경제학의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경제학을 더욱 정확하게 설명하기 위해 수학을 이용했으며, 이론경제학과 응용경제학 분야에서 폭넓게 활약했다. 또한 자유무역이 이루어지면 국가간에 생산요소의 이동이 없어도 양국의 생산요소가격이 균등화 된다는 요소가격균등화의 정리를 창시했다.
1915년 미국 인디애나주 게리에서 태어난 사무엘슨은 16세에 시카고 대학에 입학해 1935년 학사학위를 받았다. 그 후 하버드대에 진학, 석사 과정과 박사 과정을 거쳤다. 그는 1940년 MIT에서 강의를 시작해 6년 후 정교수 자리에 올랐고, 강단에서 수많은 석학들을 양성했다. 특히 로렌스 클라인과 조지 아켈로프, 조셉 스티글리츠 등 3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2001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스티글리츠는 "그의 무역학과 국제 경제 이론은 세계화로 인해 그 영향력이 커져가고 있다"며 "그가 이 이론을 내놓은 50년 전보다 오늘날 더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존 F 케네디와 린든 존슨 전 대통령이 그에게 경제 자문을 요청하면서 그의 명성이 더욱 높아졌으며, 1966년~1981년에는 미국 시사 잡지인 뉴스위크에 칼럼을 게재하며 활동했다.
연준 부의장직을 지낸 그의 제자 중 한명인 앨런 블라인더는 "그는 재정, 국제 무역, 거시 경제학 등 다양한 경제학 분야에서 혁명을 일으켰다"고 말했다.
한편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의장인 로렌스 서머스가 그의 조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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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수민 기자 hyunhj@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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