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답한 속 풀어주는 해장 음식을 찾아서…(13)삼계탕
◆소뿔도 꼬부라드는 더위의 해장은 = 바야흐로 삼복더위가 한창인 요즘, 숨이 턱턱 막히는 후텁지근함에 술 한 잔 마시자는 제안은 썩 반갑지 않다. 손사래를 치며 '삼복더위에는 굳은 소뿔도 녹아서 꼬부라진다'는 속담도 있는데 무르기 짝이 없는 사람이 술 취해 흐느적거릴 필요 없다고 스스로 다짐한다. 하지만 타의든 자의든, 피할 수 없는 술자리도 있게 마련. 덥고 습한 기운 헤치고 호방하게 잔을 드는 것이 피서 아니겠냐고 외치며 열대야를 지새우는 날도 있다.
◆삼계탕, 언제부터 먹었을까 = 복날 서울의 유명 삼계탕집 앞에 길게 늘어선 줄은 새삼 이 음식이 우리의 대표 보양식이라는 것을 확인시켜준다. 아무리 줄이 길어도, 뙤약볕이 내리쬐어도 복날이면 기어이 삼계탕 한 그릇 먹어야 힘이 날 것만 같다. 해장과 보양이 동시에 필요한 날이면 더욱 그렇다. 우리만의 심정은 아니다. 우리나라를 찾는 외국인 관광객들에게도 삼계탕은 인기 메뉴다. 그들은 한국이라고 하면 생각나는 음식으로 삼계탕을 꼽기도 한다.
그런데 의외로 오늘날과 같은 모습의 삼계탕을 먹어온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닭이야 예로부터 선조들의 영양 공급원이었지만 여기에 인삼을 더해 끓이는 방식은 오래되지 않았다는 얘기다. 삼계탕과 비슷한 조리법이 처음 등장하는 문헌은 1917년 발간된 방신영의 '조선요리제법'이다. 여기엔 "닭의 배를 갈라 내장을 제거하고 뱃속에 찹쌀과 인삼가루를 넣은 뒤 내용물이 쏟아지지 않게 잡아맨 후 물을 붓고 끓인다"고 소개하고 있다. 다만 이런 조리법을 알아도 당시 닭은 사위가 오면 대접할 정도로 귀한 재료였고, 인삼 역시 고가의 약재였기 때문에 이를 함께 끓여 먹는다는 것은 서민들에게는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삼계탕 맛의 핵심은 닭 = 삼계탕에 들어가는 닭은 영계다. 육계를 30일간 키워낸 것을 주로 쓴다. 이 영계의 뱃속에 인삼, 찹쌀, 대추, 마늘 등을 채워놓고 국물과 함께 끓여낸다. 인삼은 성질이 뜨거워 말 그대로 '이열치열'로 더위를 이기게 한다. 동시에 숙취도 잊게 만는다. 또한 사포닌 함유가 높아 지방을 몸 밖으로 배출시킨다. 대추는 비타민C가 많아 술에 지친 심신의 피로회복에 좋다. 한때 삼계탕 속 대추가 닭의 나쁜 성분을 흡수한다는 얘기가 돌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라고 한다. 대추는 오히려 소화기능을 돕는다. 이밖에도 삼계탕 속에 들어간 마늘은 항암 효과가 있고, 황기는 면역기능을 강화한다. 은행은 폐를 보호해 호흡기 질환에 좋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닭이다. 닭은 단백질 함량이 높은데 이는 우리 몸에 필요한 에너지를 만든다. 게다가 탕으로 끓여 치킨 등과 달리 소화가 잘 된다. 부재료에 가리지 않고 닭의 맛을 온전히 느낄 수 있도록 조리하는 게 제대로 된 보양식이자 해장식인 셈이다. 맛칼럼리스트 황교익도 그의 책 '미각의 제국'에서 이 점을 지적했다. 그는 "흔히 삼계탕이라고 하지만, 계삼탕이 맞는 말이다. 닭이 주재료이고 인삼은 부재료인 까닭이다. 이렇게 음식의 이름을 바로잡아 놓고 보면 이 음식 맛의 중심이 보인다"고 썼다.
김철현 기자 kc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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