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해였던가, 참 흉흉한 소문이 돈 적이 있다. 어느 유명한 중견가수가 남의 여자를 탐하다가 들켜서 보복을 당했는데, 신체의 은밀한 ‘그 부분’을 제거 당했다는 소문이었다. 중견가수가 넘봤던 여자가 하필 일본 야쿠자 두목의 여자였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 가수는 그 일로 심한 정신적·신체적 충격을 받았는데, 그 충격으로 인해 일체의 외부활동을 중단할 수 밖에 없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사실, ‘절단사건’이 사실이라고 한다면 그런 끔찍한 일을 당한 사람에게 마이크를 들이민다는 것 자체가 잘못이다. 하지만 언론윤리 같은 것은 당시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다. 상당수 언론사들이 사라진 가수의 은신처를 찾는데에만 혈안이 돼 있었고 전국의 심산유곡의 암자들마다 ‘누구를 찾는다’며 찾아온 기자들의 발길이 그득했다. 어느 깊은 산골 작은 절집의 늙은 공양주 보살이 “내 생전에 그렇게 많은 기자들을 만나본 것을 처음이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결국 그 흉측했던 소문은 당사자인 중견가수가 공개석상에 나타나 바지 지퍼를 내리는 퍼포먼스를 한 뒤에야 마무리됐다. 생각해보면 그런 블랙코미디도 없다. 봉건 왕조시대도 아니고 겨우 불륜행각 정도에 신체 일부가 손상됐다고 생각하는 것도 웃기고 그 소문이 진짜라고 대중들이 철석같이 믿었다는 것도 기가 막힌다. 더 기가 막힌 건 진실을 밝히기 위해 직접 바지를 벗는 것 외에 다른 입증방법이 없었을 정도로 광기가 서렸던 대중의 관음증이다. 그리고 그 광기는 언론이 부추켰다.
대중의 관심이나 여론으로 움직이는 것이 민주주의라고 하지만 개인의 신체와 같은 ‘전속적 인권’은 함부로 침해할 수 없는 영역이다. 설령 대중이 그런 영역을 넘나들려 한다면 언론은 그걸 지적하고 막아서야 한다. 그런 점에서 우리 언론은 아직 멀었다. 오히려 피해자가 소수이자 외톨이라는 점을 악용해 더욱 집요하고 가혹하게 덤벼들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어쩜 이번 일은 우리 언론의 치부에 ‘크고 검은 점’으로 남을 지도 모르겠다.
장용진 기자 ohngbear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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