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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칼럼] '시(習)황제'와 의법치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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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베이징 박선미 특파원]"중국 특색 사회주의 사업의 전체 구도는 5위일체(경제·정치·문화·사회·생태문명 건설)이고 전략구도는 4개전면(샤오캉사회 건설·개혁심화·의법치국·종엄치당)이다."

1년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제19차 중국공산당 전국대표대회(당 대회) 업무보고에서 3시간24분동안 이어진 마라톤 연설을 통해 중국특색 사회주의를 계승하고 발전시켜야 한다면서 강조한 내용이다. 여기서 5위일체, 4개전면은 시 주석의 통치 방향을 구성하는 핵심 내용으로 통한다. 보통 1시간 남짓 연설했던 시 주석이 당시 3시간을 훌쩍 넘는 시간 동안 마라톤 연설을 하는 것을 보고 1인권력에 대한 자신감이 드러났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특히 언급된 4개전면 가운데 의법치국은 시 주석의 간판 구호이자 그의 자신감이기도 하다. 역대 정권 중 법치를 전면적으로 추진하겠다고 선언한 사람도 시 주석이 유일하다보니 의법치국은 어느새 시 주석의 위대한 업적으로 자리잡았다. 각 분야에서 자주 거론되는 의법치국은 이슈가 터질 때마다 중국 정부의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해왔다.

중국은 지난 9월 국제형사경찰기구(인터폴·Interpol)의 멍훙웨이(孟宏偉) 전 총재 실종사건 때에도 의법치국을 강조했다. 멍 전 총재가 중국에서 갑자기 실종돼 논란이 일고 뒤늦게 중국 당국이 반부패 혐의로 체포해 조사를 하고 있다고 밝혔을 때 중국은 "정부의 의법치국과 반부패 의지를 명확히 보여준 것"이라고 주장하며 그의 조사를 정당화했다. 중국은 조사 대상자를 원하는 장소에서 6개월까지 임의로 구금할 수 있도록 법으로 허용하고 있는데, 이 때문에 조사 대상자의 소재 및 상황을 공개하지 않고 임의로 구금하더라도 "법에 따라 조처했다"는 말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지난 1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 주석의 만찬 회동에서는 중국의 의법치국이 빛을 잃었다. 마치 시 주석이 ‘시(習)황제’로 불릴 정도의 절대 권력을 쥐고 있고 있다 보니 그가 강조하는 의법치국은 곧 "시 주석의 말이 법이다"라는 말과 통용되는게 아니냐는 착각을 불러 일으킬 정도였다.
미 백악관이 발표한 성명에 따르면 시 주석은 트럼프 대통령과 무역 문제를 놓고 협상을 진행할 때 "이전에 승인되지 않은 퀄컴의 네덜란드 NXP 인수안이 다시 신청되면 중국은 이를 승인하는데 열려 있다"고 말했다.

세계 최대의 스마트폰 칩 메이커인 미국 퀄컴은 NXP반도체를 440억달러(약 50조원)에 인수하는 계획을 세웠지만, 인수계약 승인을 얻어야 하는 9개 시장 가운데 유일하게 중국에서 승인을 받지 못해 M&A를 포기해야 했다. 당시 승인 '퇴짜'를 놨던 중국 상무부는 "NXP 인수 심사 결과 해결이 쉽지 않은 문제가 발견됐다”고 이유를 댔다. 외교부 역시 "인수건 심사가 반독점법에 근거해 이뤄졌다"고 밝히며 승인거부의 정당성을 부여했다.

이번에 미국과 무역협상을 하면서 시 주석 입에서 중국이 퀄컴의 NXP 반도체 인수 승인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발언이 나온 것은 중국이 과거 인수안 승인을 무역전쟁의 보복 카드로 활용했음을, 그리고 지금은 무역협상을 이끌 유인 카드로 활용하고 있음을 인정한 셈이 된다. 규정과 법에 따라 심사해 이뤄져야 하는 M&A 승인이 정치적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기도 하다.

시 주석의 뒤집기 발언으로 중국은 무산됐던 퀄컴의 NXP 인수를 되살릴 길을 열어줬지만, 이미 합의안 유효기간이 만료돼 거래의 회생 가능성은 희박한 상황이다. 퀄컴의 NXP 인수 계약은 중국 승인을 기다리느라 지난 4월 한 차례 연장됐다가 미중 무역 긴장감이 최고조로 치닫던 7월에 만기를 맞아 종료됐다. 퀄컴이 양국 무역 갈등에 희생됐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시황제'로 불리는 시 주석의 입으로 의법치국에 흠집을 낸 중국은 2035년까지 법치국가, 법치정부, 법치사회를 완성한다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까.




베이징 박선미 특파원 psm82@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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