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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제주 감귤, 대학나무에서 관광나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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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가을 하늘은 귤밭에서 수확 가위를 재바르게 놀리는 여자 삼촌들의 손놀림으로 높아간다. 톡톡톡… 숙련된 가위질로 바구니에 귤이 순식간에 쌓이고, 주렁주렁 매달려 있던 귤들을 털어낸 귤나무 가지들은 탁탁탁… 소리를 내며 허리를 다시 곧추세운다. 이 서슬에 제주의 가을 하늘은 한 길만큼 높아지는 것이다. 제주도에서 귤을 딴다고 하지 않고 탄다고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렇게 요즘 제주도에서는 가야금을 타듯, 소담스럽게 익은 감귤을 타는(彈) 풍년가가 한창이다.

더구나 올해는 귤 값이 '좋다'고 한다. 금값만큼은 아니더라도 이만하면 어디냐고 다들 화색이다. 그런데 한 꺼풀 벗기면 불편한 진실이 드러난다. 올해 '하늘'은 결코 농민 편이 아니었다. 봄 냉해에 여름 가뭄과 폭염, 가을 태풍까지 3중고를 견뎌낸 끝이라 과수 농사로는 건질 게 없다. 제주도 감귤 농가도 같은 처지라 노지 감귤 수확량이 예년보다 못하고, 그런 만큼 수요와 공급의 원칙에 따라 귤 값이 올랐다고 보는 것이다.
요즘 형성된 노지 감귤 수매가를 귀동냥해보니 관당 4500~5000원 선이다. 수확량 감소에 따른 시름을 다소 덜었다는 얘기다. 10㎏ 기준으로 1만2000~1만3000원 선이다. 이것이 계통출하상의 수집상, 도매시장 경락을 거쳐 소매상, 소비자에게로 가면 최종 가격은 두세 배 가까이 뛴다. 유통 마진을 감안해야 하기에 산지 가격과 소비자 가격의 폭에 대해 시비를 가리고 싶지는 않다. 다만 관당 5000원 선의 산지 가격도 농민의 순소득으로 정산하고 보면 보잘것없다는 점은 짚어야겠다.

제주도 감귤 농가들이 이맘때 감귤 가격만큼 신경을 곤두세우는 것이 일손 확보다. 일손 문제에 이르면 제주도 농가들은 너나없이 한숨 소리가 높다. 과수는 저마다 수확 적기가 있다. 제때 수확해 잘 저장해놓은 뒤 값이 좋을 때를 맞춰 출하 시기를 정하는 것이 1년 농사의 성패를 좌우하는 막바지 줄다리기다.

조생종 노지 감귤의 경우 수확 적기는 11월 중순에서 12월 초다. 보통 12월10일에서 20일까지를 수확 한계기로 본다. 그러니 이 시기에 맞춰 1만6500㎡(5000평) 정도 규모의 감귤 농가에서 제대로 수확을 하려면 하루 열 명 가까운 수확 인력을 확보해 절대 수확 시간 기준으로 열흘 이상 애를 써야 한다. 문제는 제주도 감귤 농가 농민들의 고령화에 따른 생산성 저하와 일손 부족이 해마다 심해진다는 점이다. 감귤 수확철이 되면 도내 거주하는 식솔들이 총동원되지만 그것만으로는 역부족이다.
제주농협이 제주도 행정 당국과 손잡고 감귤 수확철에 운영하는 국민수확단의 탄생도 일손 부족을 해결해보려는 고민과 노력에서 나온 것이다. 작년의 경우 11월 중순부터 12월 중순까지 연인원 1만명 가까이가 제주도에 들어와 감귤 수확을 도와줬다고 한다. 한편 감귤 수확은 숙련이 필요하기에, 국민수확단의 활동 취지를 '관광을 겸한 농사 체험'으로 오해한 일부 참여자들 때문에 실망한 농가도 적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제주도는 해마다 두 번, 전역이 노란색으로 물든다. 4월 유채꽃이 한창일 때가 한 번이고, 이맘때 노지 감귤이 담황색으로 익어가면서 두 번째 장관을 이룬다. 1960, 1970년대 제주 감귤이 귀하게 대접받았을 때 제주도 감귤나무의 별칭이 '대학나무'였다. 환금 가치야 달라졌지만, 지금도 그 대접은 유효하다. 여전히 제주도 1차 산업의 핵심 분야가 감귤 농사이고, 그 감귤밭이 연출하는 제주도만의 풍경이 제주도 관광을 명품 관광으로 만드는 주역이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제주도의 감귤나무는 이제 '관광나무'로 불리며 또 다른 차원에서 대접받아야 마땅하다. 그를 위해 제주도 경관 산업의 주요 분야로 감귤 농업이 재조명돼야 한다. 신품종 개발, 고품질 브랜드 감귤 생산을 위한 정책 입안 및 지원 등 해야 할 일은 많고 가야 할 길은 멀지만 제주도를 지키고 빛내는 경관 산업인 만큼 제주도를 넘어 전 국민적인 관심과 지혜가 모이기를 바랄 따름이다.

정희성 시인ㆍ제주도 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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