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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석의 몸으로 쓰는 이야기] 하이든의 '시계'

최종수정 2018.06.08 11:09 기사입력 2018.06.08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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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석 문화부 부국장

허진석 문화부 부국장

선생님은 예뻤습니다.

동국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학과를 졸업하신 선생님. 이 분에게서 한 자 틀릴 때마다 30센티 대나무 자로 손바닥을 맞으면서 한문을 배웠습니다. 시의 아름다움과 문학의 즐거움도 선생님 덕분에 알게 되었습니다. 수업 시간에 '산 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하는 노래를 들려주신 분. 초여름 어느 날 당번이 되어 유리창을 닦던 아침, 큼직한 꽃무늬 원피스에 흰 샌들을 신고 복도 저편에서 걸어오시던 황홀한 모습. 또각또각 가까워 오던 발자국 소리가 지금도 눈을 감으면 현재인 듯 생생합니다.

선생님을 위해 중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 이광수의 소설을 모조리 읽어 치웠습니다.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도요. 이 책을 빌려간 다음 잃어버린 친구와 싸운 이유는 선생님 손길이 닿은 소중한 책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여름방학에 제가 쓴 '시'와 '수필'과 '소설'들을 묶은 '인생'이라는 이름의 문집은 전화번호부보다 더 두꺼웠지요. 선생님께 '바치기 위해' 글씨도 멋지게 쓰려고 애썼습니다. 파카 만년필!

어느 날 선생님께서 음악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하이든. 동양방송 라디오에서 새벽에 시작되는 고전음악 프로그램의 시그널 뮤직이라고 했습니다. '딴 따 따 따 따아~라 라 라 라라라라라라라…'하고 시작되는 '시계' 교향곡 2악장. 소년의 뇌리에 섬광처럼 와서 박힌 멜로디입니다.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는 분들은 흔히 죽으면 관에 베토벤이나 바흐의 음반을 넣어 달라고 유언하겠다는 말씀을 합니다. 저는 하이든의 음반을 가져가겠습니다. 토스카니니가 1929년에 뉴욕 필하모닉을 지휘해 녹음한 빅터의 바이닐. 지글거리는 소리골의 심연 너머 하염없는 추억의 공간을 지나, 마침내 바순의 낮은 피치카토가 4분의 2박자로 선생님의 멜로디를 재현하면 억겁 속에 미라처럼 누운 저의 혈관에도 잠시나마 따뜻한 피가 돌 것만 같습니다.
선생님은 사랑이 많은 분이었지만 헤프지는 않았습니다. 꾸지람은 매서웠고, 30센티 대나무 자를 아끼지도 않으셨습니다. 한 번 배우면 절대로 잊지 않을 만큼 꼼꼼하게 가르쳐 주셨고, 기회 있을 때마다 확인하셨습니다. 제 머릿속에 들어앉은 모국어는 선생님께서 심어주신 말과 글입니다. 저는 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 선생님 흉내를 내려 했지만 실패했습니다. 불가능한 일이었지요.

스티븐 미슨은 '노래하는 네안데르탈인'에서 네안데르탈인의 의사소통 체계로 'Hmmmmm'을 제시합니다. 전일적(Holistic)ㆍ다중적(Multi-modal)ㆍ조작적(Manipulative)ㆍ음악적(Musical)ㆍ미메시스적(Mimetic)이었다는 뜻에서 앞글자를 따낸 것입니다. 메시지가 덩어리째 이해되며, 타인의 감정과 행동에 영향을 미치고, 소리와 몸을 동시에 사용하며, 멜로디와 리듬을 활용하고, 제스처와 소리 공감각을 이용한다는 겁니다. 그러니 소리는 생각이기도 합니다. 귀가 생각의 입구인 동시에 주인이 되기도 합니다.

2002년 10월, 프라하에 갔을 때 구시가 광장 옆에서 천문시계를 보았습니다. 40대의 가을방학. 그때 선생님 생각을 했습니다. 장미 같은 입술을 지닌 선생님이 들려 주셨던 그 멜로디를 기억했습니다.

문화부 부국장 huhb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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