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트트랙 국가대표 심석희 선수가 맞았다. 지난 소치올림픽 고등학생으로 국가대표로 발탁되 월등한 기량으로 금메달을 따내던 장면을 기억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큰 충격이다. 어린 그녀의 자질을 알아보고 발탁해 14년을 키웠다는 바로 그 코치에게 맞았단다. 무차별 구타였다. 골방에서 두드려 맞고 웅크리고 있는 어린 금메달리스트. 상상하기조차 끔찍한 장면이다. 평창동계올림픽 직전 문재인 대통령이 쇼트트랙 국가대표 격려차 진천 선수촌에 방문했을 때 심석희 선수가 보이지 않았던 게 빌미가 되어 우연히 세상에 알려졌다. 전날 코치의 구타가 있었고 대통령이 활짝 웃으며 방문했던 날 심석희 선수는 두려움과 모멸감에 선수촌을 무단이탈한 상황이었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라는 인지도와 대통령의 방문이라는 우연이 겹쳐 그나마 이렇게라도 알려진 게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해당 코치는 협회로부터 영구제명이라는 징계를 받았고 올림픽 직전 퇴출되었다. 들리는 이야기에 따르면 베이징동계올림픽을 준비하는 중국 쇼트트랙 대표팀에 합류했다고 한다. 중국 선수들은 안 때릴까 걱정이다.
지난 주 오랫동안 알고 지낸 아이스하키 코치를 만나 대학시절 구타경험을 들었다. 그가 다녔던 대학은 아이스하키 명문교다. 대학 2학년 때 북유럽의 아이스하키 선진국으로 전지훈련을 갔을 때 이야기다. 너무 맞아서 더 이상은 안 되겠다고 선수들이 숙소를 이탈했단다. 이역만리 말도 안 통하는 타지에서 오죽했으면 도망갔을까? 무슨 생각이었냐고 했더니 막연히 대사관을 찾아가 망명을 신청하려고 했다면서 씩 웃는다. 가지고 있던 돈도 다 떨어져 노숙을 하며 쫄쫄 굶다가 시내 식당에서 피자를 시켜놓고 먹지도 못하고 붙잡혀 갔다. 눈앞에 있던 피자를 먹지 못한 게 너무 아쉽다는 그는 끌려가 코치에게 맞다가 기절했다. 더 놀라운 건 그 감독이 귀국에 지도자생활을 계속 했다는 점과 그렇게 때렸어도 자신의 기량향상에 큰 도움을 줬기 때문에 지금도 욕할 수 없다는 젊은 코치의 태도였다. 맷정. 누군가 이런 말을 했다. 때리면서 그리고 맞으면서 둘 사이에 깃드는 끈끈한(혹은 지긋지긋한) 정. 맞다가 기절했던 이야기를 하면서 체념한 듯 씁쓸하게 웃는 그를 보며 이런 폭력의 대물림이 쉽게 사라지지 않을 거라는 막연한 불안감이 엄습했다. 때리면 안 된다고 아무리 이야기 한들 때리고 맞는 사람 사이의 끈적끈적한 맷정이 존재하는 한 폭력의 대물림은 계속될 것이다.
그들은 왜 계속 때릴까? 그 이유는 어쩌면 지극히 단순할지도 모른다. 그들이 때린 이유는 맞아봤기 때문이다. 때리는 방법 이외의 다른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때리고 맞으면서 서로 정이 들었으리라.
정용철 서강대 교수ㆍ문화연대 공동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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