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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현 칼럼] '백년전쟁'

최종수정 2016.08.11 11:03 기사입력 2016.08.11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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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현 작가

김영현 작가

중세시대 프랑스 왕위 계승권을 놓고 벌어진 영국과 프랑스의 전쟁은 100년 이상을 끌어 이른바 ‘백년전쟁’이라 불린다. 말이 백년이지 백년은 참으로 긴 세월이다. 그 사이 유럽엔 흑사병이 돌아 인구의 3분의 1이 죽어나갔다. 우리나라에도 1592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반도를 침략했던 임진왜란은 정유재란과 합쳐 6년의 세월을 끌었고, 일제 강점기 조선의병과 독립군들의 전쟁은 36년이란 긴 세월을 건너지 않으면 안 되었다.

하긴 길이로만 보자면 이보다 훨씬 역사가 긴 전쟁들도 숱하게 있다. 십자군 원정은 1096년부터 1270년까지 무려 200여년을 끌었고, 이슬람의 창시자 무하메드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된 이슬람 시아파와 수니파의 전쟁은 오늘날까지 1500여년을 끌어오고 있다. 1883년에 프랑스와의 전쟁으로 시작된 베트남전은 뒤를 이은 미국과 1975년 종전이 되기까지 근 100년을 끌었고, 몽고의 침입에 맞선 고려군의 항전 역시 약 80여 년 간으로 기록되어 있다.
[김영현 칼럼] '백년전쟁'

그에 비하여 현재의 전쟁은 속전속결을 원칙으로 한다. 말하자면 압도적인 무기, 압도적인 화력을 이용한 속도전이다. 1982년 영국과 아르헨티나 사이에 벌어졌던 포클랜드 전쟁은 75일 만에 항공모함을 앞세운 영국 해군의 일방적 승리로 끝났다. 1990년 이라크와 미국을 비롯한 연합군 사이에 벌어졌던 제1차 걸프 전쟁은 지상전 개시 불과 100시간 만에 이라크의 40개 사단 정예군 20만명을 단번에 말 그대로 ‘사막의 폭풍’처럼 휩쓸어버리고 끝났다.

9.11테러를 기화로 벌어졌던 2001년의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이나 2003년의 제2차 걸프전이라 불리는 이라크 침공 역시 별반 다를 바가 없다. ‘항구적 자유 작전’이라 불리는 아프간과의 전쟁은 텔레반 정권의 강력한 저항에도 불구하고 개전 초기에 이미 미국의 일방적 승리로 끝나버렸고, 미국이 개발한 온갖 첨단 무기의 실험장이기도 했던 이라크 전 역시 불과 개전 26일 만에 마무리되었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가공할 위력의 폭탄은 적군은 물론이고 민간인을 포함해 국토 전체가 단시간에 말 그대로 쑥대밭, 석기시대 상태로 만들어버렸다. 조지 부시 대통령은 2003년 5월 의기양양하게 항공모함 링컨호에 올라 ‘테러와의 전쟁’이 마침내 승리로 끝났음을 선언했다.

그런데 그로부터 15년의 세월이 지난 오늘 2016년, 우리는 지금 과연 어떤 세상에서 살고 있는가? 우리는 정말 자유롭고 안전하고 행복한 세상에서 살고 있는가? 대답은 누구나 똑같이 ‘아니다’이다. 지금 우리는 테러가 일상화되어 있는 불안한 세상에 살고 있다. 자폭테러는 이제 유럽의 안방 깊숙한 곳, 프랑스 영국 독일을 가리지 않고 벌어지고 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복수라도 하는 양 무차별적이고 가혹한 폭격은 이 시간에도 멈추지 않고 있다. 증오는 증오를 낳고, 그럴수록 증오는 더욱 진화를 거듭해 간다. 이 뿌리 깊은 무지와 편견으로 무장한 전쟁은 결코 끝이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20세기와 21세기에 걸친 또 하나의 아주 긴 전쟁이 있다. 바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한반도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이다. 1945년 해방과 함께 시작된 남북한의 전쟁은 1950년의 ‘한국전쟁’을 거쳐 지금까지 무려 70여년을 넘어가고 있다. 아마 현대사에서 가장 길었던 전쟁 중의 하나였던 베트남 전쟁을 추월할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는 이 전쟁 역시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때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시절 잠시 떠올랐던 평화통일의 꿈도 물 건너간 느낌이다. 남북 간에는 어느 때보다 증오의 깊이가 더해가고 있고, 주변 강대국 간의 군비경쟁도 치열해져가고 있다. 핵과 사드라는 강대강의 대결만이 남았을 뿐이다.
분노는 분노를 부르고, 증오는 증오를 낳는다. 문득 통일을 갈구했던 한 시인의 절절한 노랫말이 떠오른다. ‘이별이 너무 길다. 슬픔이 너무 길다. 선 채로 기다리기엔 세월이 너무 길다. 단 하나 오작교마저 끊어져 버린 지금, 가슴과 가슴으로 노둣돌을 놓아 면도날 위라도 딛고 건너가 만나야 할 우리...’(문병란의 시 ‘직녀에게’ 중에서)
돌아가신 시인의 슬픔에 왠지 가슴이 멘다. 그의 말대로 백년이 아니라 수백 년이 걸려도 우리는 이 강을 건너가지 않으면 안 된다. 분단고착화를 획책하는 어떤 힘과 음모에도 굴복해서는 안 된다. 그것이 우리의 운명이다.




김영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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